[인터뷰] '윤해병' 윤상균, '또 한 번의 기적' 꿈꾸다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5.27 07: 05

두 번의 미지명 후 현역 해병대 입대. 그러나 그는 그 곳에서 은인을 만나 다시 프로 선수로서 걸맞는 힘을 키워 꿈의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그는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꾼다.
 
윤상균(29. LG 트윈스). 충암고-단국대를 거치며 두 번의 드래프트서 낙방한 뒤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고 해병대 입대했던 그는 2008년 SK 신고선수로 프로 무대를 밟은 뒤 그 해 6월 정식 등록에 성공했다. 타격은 쓸 만 하다는 평을 팀 내에서 줄곧 듣던 윤상균은 지난해 7월 LG로 트레이드 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쳤다.

 
그리고 올 시즌. 윤상균은 18경기 3할4푼6리(26타수 9안타, 26일 현재) 4홈런 12타점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화려하지 않은 성적이지만 출장 기회가 들쑥날쑥한 대타 요원으로서 활약 중이다. 특히 좌완투수 상대 스페셜리스트로 류현진(한화), 차우찬(삼성), 양현종, 트레비스 블렉클리(이상 KIA) 등 좌완 에이스들에게 뼈아픈 경험을 안겼다. 타점 하나하나가 모두 임팩트가 컸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고도 한편으로는 유쾌했다. '팬들이 많이들 알아보시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유니폼 입었을 때랑 사복 입었을 때랑 달라서 그런지 거의 못 알아보세요. 거의 무인지경으로 집에 걸어갔습니다"라며 "앞으로는 사복을 세로 줄무늬 옷으로 입어야 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너털웃음을 지었다. 암흑 같던 순간을 이겨내고 그라운드를 밟은 선수의 긍정적 마인드가 인상깊었다.
 
▲ 네 살 위 누나의 뜻깊은 조언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은 LG에서의 생활에 대해 윤상균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SK에서도 승리를 향한 내부 경쟁 속 기량을 키울 수 있었다는 장점을 이야기한 윤상균은 LG에서 배려 속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야구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데 고마움을 나타냈다.
 
"승리를 넘어서 선수가 제대로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시는 것 같아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홈에서 이겼을 때 수훈선수 두 명을 선정하는 것 외에도 팀 플레이에 힘을 쏟은 숨은 MVP 선수도 뽑으니까요. 그 점이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2남 1녀 중 막내인 윤상균. 특히 그와 네 살 터울의 누나는 농구선수로 실업팀까지 입단했던 단체 스포츠 선배다. 숭의여고 시절 청소년대표를 거쳐 코오롱에서 가드로 활약했던 윤계영씨가 윤상균의 친누나. 누나를 직접 보고 조언을 들으며 윤상균은 조금 더 수월하게 단체 스포츠 야구에 적응할 수 있었다.
 
"누나가 고교 시절일 때 전 초등학생이었거든요. 그 때 합숙소도 자주 놀러갔어요. 그러면 누나 친구분들도 절 귀여워해주시고.(웃음) 사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누나가 누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환경이었다고 하더라구요. IMF로 코오롱이 해체했을 때 누나가 삼성생명에 영입 제의도 받았었는데 운동이 많이 힘들다면서 농구를 포기했습니다".
 
"내성적인 누나가 운동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도 많이 봤어요. 누나가 조언도 자주 해줬고. 특히 그 이야기를 가슴에 새겼어요. 단체 스포츠니까. 팀에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개개인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것".
 
 
 
▲ 해병대 시절, 복근 운동-500회 스윙 잊지 않아
 
충암고 졸업 당시에도 단국대 졸업 당시에도 윤상균을 향한 프로 구단의 러브콜은 없었다. 상무 입대도 여의치 않자 그는 2005년 3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대학교 1,2학년 나이에 입대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대학 졸업 후 우리 나이 스물넷에 입대한 윤상균은 '나이 많은 신병'이었다.
 
"소대장 하사가 저랑 동갑이었어요. 같이 이야기하다가 점점 친해지고 소대장이 개인 운동을 할 때는 이병이던 절 꼭 데리고 나가서 같이 뛰면서 운동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제게는 커다란 은인이지요. 요새도 '소대장, 소대장' 하면서 연락합니다".
 
경비 소대에서 테니스장 관리 사병으로 전임한 윤상균은 그곳에서 자신의 운동 시스템을 갖춰갔다. 테니스장 정리 의무도 빼먹지 않고 틈틈이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야구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은 것.
 
"군대 밥이 아무리 좋아도 어쨌든 군대 밥이잖아요. 먹다보니 계속 살은 빠지고 매일 잊지 않고 하루에 복근 운동 1000회, 스윙 300~500회는 꼬박꼬박 했어요. 호봉이 높아진 뒤에는 집에 연락해서 덤벨도 갖다 놓고 대학 후배한테 부탁해서 방망이도 얻고. 그러니까 복근도 '빡' 나오고 살도 '빡' 빠지고.(웃음) 살이 점점 빠지니까 소대장이 사흘에 한 번은 삼겹살도 사줬습니다".
 
주변인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신이 없었을 것이라는 고마움이 상기된 표정 속에 다시 비춰졌다. 다만 윤상균은 '캐치볼을 할 수 있었더라면'하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물론 농담이었다.
 
"군대에서 목욕도 길게 못했는데 소대장 덕택에 그 점에서도 정말 많은 배려를 받았어요.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캐치볼을 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수지에서 돌 던지는 게 그나마 송구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포구를 잘 못하는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송구는 진짜 자신있는데".
 
▲ 경쟁 신경쓰지 않는다…마음가짐이 중요
 
지난해 LG는 신인왕 후보였던 유격수 오지환 외에도 '작뱅' 이병규(24번)를 발견했다. 103경기 3할 12홈런 53타점이 '작뱅' 이병규의 성적. 손이 다르지만 공격 특화형 타자인 그가 무릎 부상을 이겨내고 1군에 합류할 경우 윤상균의 입지 축소 여부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이병규가 복귀할 경우 윤상균은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1군 생활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윤상균은 "경쟁은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앞세웠다. 누굴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SK 시절에 많이 느꼈던 점이에요. '저 친구를 넘어서야 겠다'라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덤벼들고 이겨도 결국 또 다른 경쟁자를 넘어서야 하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다른 생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되뇌입니다. '오늘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살아갈 것인가'라고. 저와 경쟁하는 누군가가 어떻게 하는 지. 그를 넘어서야 하는 경쟁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시즌 목표에 대해 윤상균은 개인 성적이 아닌 "팀의 4강 진출"을 먼저 강조했다. 이기는 야구를 펼쳐야 비로소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그의 신조가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야구인생의 목표도 함께 밝혔다.
 
"골든글러브요. 그건 정말 제 야구인생 정점의 목표입니다".
 
윤상균 이전 LG의 32번은 '대기만성형 선수'였던 최동수(SK)의 등번호였다. 최동수 또한 LG 시절 은퇴 위기를 수차례 이겨내고 뒤늦게 한 시즌 두 자릿 수 홈런을 보장하는 타자로 라인업 한 자리를 꿰찼다. 우리 나이 서른. 뒤늦게 발돋움을 시작하는 윤상균은 더욱 화려한 '대기만성 시즌2'를 꿈꾼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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