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어요".
한화 5년차 우완 투수 김혁민(24)이 놀라운 성장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김혁민은 지난 27일 잠실 두산전에서, 11-10으로 근소하게 리드하던 9회 1사 2·3루 역전 위기에서 구원등판, 정수빈과 이종욱을 각각 2루 땅볼·삼진으로 처리하며 1점차 리드를 지키는 슈퍼세이브를 거뒀다. 무려 4차례나 역전을 주고받는 혈전 속에 또 한 번 넘어갈뻔한 흐름. 한대화 감독이 수문장으로 내던진 김혁민이 역전 흐름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한대화 감독은 "김혁민의 배짱이 내 배짱을 이겼다"고 표현했다. 그런 상황에서 선발 김혁민을 올린 한 감독 배짱도 대단했지만 그 상황을 실점없이 막아낸 김혁민의 배짱이 더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이날 9회부터 몸을 풀기 시작한 김혁민이 마운드에 오르기 전 한 감독은 "맞아도 네가 지는 것이 아니다. 막으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네 잘못이 아니니까 편하게 던져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김혁민은 보란듯 완벽하게 막아냈다. 데뷔 첫 세이브가 아주 결정적인 순간 나왔다.

김혁민은 "9회 시작 전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 오넬리 페레즈가 막아줄 것으로 믿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며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포수 (이)희근이형 리드대로만 던지자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자신있게 던졌고 결과가 너무 좋았다. 야구하면서 그런 순간적인 짜릿함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한대화 감독도 "처음에는 김혁민의 얼굴이 상기돼 있더라. 그런데 초구를 과감하게 몸쪽 스트라이크존으로 던졌다. 그때 '되겠구나' 싶었다"고 떠올렸다.
사실 한 감독으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틀 전 공 80개를 던진 선발투수를 마무리로 올리기란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하지만 한 감독은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에서 최고의 승부수를 던졌고, 그것이 보기좋게 완벽한 결과를 낳았다. 한 감독은 "김혁민의 마무리기용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한 감독은 "김혁민이 생각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떨지 않고 막을 것 같았다"며 웃어보였다. 젊은 선수의 겁없는 패기에 기대를 걸었고 그게 적중했다.
김혁민도 "아무 생각없이 던졌다"고 인정했다. 투수든 야수든 수싸움을 많이 하는 야구에서는 오히려 단순해질수록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 감독도 그런 김혁민이 기특하기 짝이없다. 그날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김혁민에게 "네 배짱이 내 배짱을 이겼다"면서 격려와 함께 어깨를 두드려줬다. 김혁민은 "감독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웃은 뒤 "아직 나는 멀었다. 앞으로도 많이 배워야 할 투수"라고 스스로를 낮췄다.
하지만 이효봉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정말 대단한 피칭이었다. 최고 마무리라는 오승환도 그런 상황에서는 막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 이제 다른 팀에서도 김혁민을 쉽게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대화 감독도 "김혁민이 진짜 마음 먹고 원하는 곳으로 던지면 타자들이 절대 쉽게 볼을 칠 수 없다. 그날 계기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많이 얻었을 것이다. 선수는 그럴 때 크게 성장한다"고 말했다. 김혁민이 한화의 혁명으로 떠오른 것이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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