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제가 해야 할 일 아니겠어요".
믿음직스럽다.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다. 삼성 마무리투수 오승환(29). 그의 존재감이 나날이 빛을 발하고 있다. 오승환은 지난달 31일 대전 한화전에서 3-2로 1점차 살얼음 리드를 지키던 9회 마무리로 나와 1이닝을 탈삼진 하나 포함 삼자범퇴로 막고 시즌 15세이브째를 따냈다. 이 부문 2위 송신영(넥센·9개)을 6개차로 멀찍이 따돌리면서 1위 자리를 질주했다. 경기 후 삼성 류중일 감독은 "오승환이 있어 참 든든하다"고 말했다. 류 감독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 경기 흐름을 바꾸는 존재

이날 한화 한대화 감독은 7회 우완 정현욱이 마운드에 있을 때 우타 대타 이양기를 기용했다. 1-3으로 뒤진 7회 1사 1·2루 상황이었다. 이양기는 한 감독의 기대대로 중견수 앞 적시타를 터뜨렸다. 경기 후 한 감독은 "만약 오승환이가 없었다면 이양기를 그렇게 빨리 기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오승환이 9회에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한다는 뜻이었다. 경기흐름 자체를 바꿔놓을 정도로 오승환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결국 한화는 7회 승부를 뒤집는데 실패했고, 예상대로 9회에 올라온 오승환은 최고 153km 강속구로 한화 타선을 제압하며 삼성의 1점차 리드를 지켰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1점차 세이브라는 점. 올해 오승환은 세이브 15개 중에서 동점 및 역전 주자가 나가있는 상황에서 거둔 터프세이브가 3개로 가장 많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타이트한 1점차 상황에서 올라와 거둔 세이브가 무려 10개나 된다. 세이브의 3분의 2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1점차 상황은 장타 한 방에 언제든 동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 하나 하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긴박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오승환은 흔들림없이 막아냈다. 블론세이브 한 차례가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오승환은 "1점차는 홈런 한 방이면 동점이기 때문에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대구 두산전에서 홈런을 맞고 블론세이브를 했다. 때문에 1점차일수록 마운드에서 더 집중한다. 힘든 점이 없지 않지만 그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점수차를 떠나 나갈 때마다 자신있게 던진다. 진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언제나 후회없이 던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결과를 떠나 후회없는 피칭. 바로 이것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오승환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다. 그는 언제나 후회를 남기지 않는 피칭을 하고 있다.
▲ 살아난 볼끝 강력한 구위

오승환의 트레이드 마크 돌직구도 완벽하게 살아났다. 31일 한화전에서 오승환은 153km 강속구를 무려 3번이나 찍었다. 152km 3개, 151km 2개, 150km 1개를 기록했다. 한화 타자들은 오승환의 빠른 직구를 커트하기에 급급했다. 삼성 수비수들은 오승환의 가공할만한 구위를 믿고 철저하게 '우향우' 수비했다. 어차피 오승환의 공을 당겨서 좋은 타구를 만들기 힘들다는 판단아래 외야수들을 우측에 집중배치했다. 오승환의 직구에 커트로 버티던 정원석의 타구는 우익수 박한이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이대수도 1루측으로 어렵게 밀어쳐 땅볼 아웃됐다. 오재필은 스탠딩 삼진. 오승환의 구위는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오승환은 "아픈데도 없고 통증도 없으니까 제 공을 던지고 있다. 시즌 초반부터 조금씩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슬라이더와 투심 패스트볼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어차피 상대 타자들은 오승환의 직구만을 노리고 들어온다. 때문에 휘어지는 슬라이더와 투심 패스트볼에는 약점을 비칠 수밖에 없다. 오승환은 "나에게 변화구를 노리고 들어오는 타자는 없을 것이다. 직구만으로 승부하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슬라이더와 투심을 섞어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승환은 슬라이더로 적절히 카운트를 잡을 뿐만 아니라 헛스윙까지 유도했다.
평균자책점 1.16을 기록하고 있는 오승환은 피안타율도 1할1푼7리밖에 되지 않는다. 77타수 9안타로 완벽에 가깝게 상대타자들을 틀어막았다. 23⅓이닝 동안 볼넷도 9개로 이닝당 출루허용률로 따지면 0.76에 불과하다. 여기에 탈삼진은 35개나 잡아냈다. 9이닝으로 환산할 경우 13.5개라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온다. 여기에 위기일수록 더 강하다. 득점권에서 12타수 1안타 1볼넷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득점권 피안타율 8푼3리. 여기에 탈삼진 7개를 잡았다. 득점권에서 삼진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심지어 오승환은 8명의 승계 주자를 받아 1명도 홈으로 보내지 않았다. 팀 동료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무리인 것이다.
▲ 팀과 함께 하는 세이브

오승환은 "팀 동료들이 도와주고 있는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9회 손시헌에게 동점 홈런을 맞고 블론세이브를 저지른 지난달 20일 대구 두산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동료들이 오히려 9회 승리를 만들어내며 그에게 승리투수라는 또 다른 훈장을 안겨줬다. 오승환은 "블론세이브를 한 번 했지만 팀이 승리를 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게 됐다. 그래서 언제나 동료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공을 돌렸다.
삼성은 오승환이 나올 때마다 수비 위주로 라인업을 짠다. 그것이 오승환에게는 또 큰 힘이다. 그는 "내가 등판하는 상황마다 수비 위주로 라인업이 바뀐다. 수비수들이 잘 도와준다"며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는 (채)상병이형도 리드를 잘해주고 있다. 세이브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팀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세이브 상황마다 블론세이브를 하지 않고 리드를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벌써 15세이브로 구원 부문 독주 체제를 구축한 오승환이다. 그에게 '예전 가장 좋았을 때 느낌이 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건 내가 함부로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말을 아꼈다. 오히려 "아프지 않고 매경기 안정감있게 던지면 결과도 좋게 따라올 것"이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오승환의 철벽 마무리로 삼성은 든든하기 그지없다. 반면 삼성을 상대하는 팀은 9회 점수를 뽑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마운드에 오승환이 있기 때문이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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