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맥주 한잔에 영 역사가 녹아있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6.01 17: 14

5만개가 넘는 펍 영업
간판은 지역·사연 담아
축구·문화·전통 얘기꽃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조용준|288쪽|컬처그라퍼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내부시설은 절대적으로 빅토리아 풍이어야 한다. 다트 같은 게임은 오로지 바의 대중적 공간에서 해야 하고, 라디오나 피아노가 있어서는 안된다. 담배와 시가, 아스피린과 우표를 팔아야 하며 바텐더는 손님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까다로운 조건은 영국작가 조지 오웰이 ‘펍’(pub)에 요구한 것이다. 오웰은 런던 중앙 블룸스버리 지역에 있는 펍 ‘피츠로이 태번’을 즐겨 찾았다. 1920년대부터 50년대 중반까지 수많은 예술가와 지성인, 보헤미안의 회합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영국 골목어귀에선 반드시 눈에 띈다는 펍을 찾아다녔다.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 인문학 탐구기라는 말이 차라리 맞다. 펍이란 공간으로 한 나라의 문화적 단면을 들여다봤다. 그저 구멍가게만큼이나 많은 술집이 뭐 그리 대단한가로 치부해볼 문제는 아니다. 역사가 들어있는 펍의 일생, 그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 한갓 허름한 간판에까지 스며있는 상징을 파악해 문화의 다양성을 끌어낸 의미가 있다. 
펍의 정식 명칭은 퍼블릭 하우스다. 선술집이나 맥주집 정도로 번역되겠지만 그 정도로는 약하다. 5만여개에 달한다는 펍은 영국에서 공공장소 이상이다. 내무장관을 지냈던 한 정치인은 “영국 역사 형성의 하원역할을 했다”고 평한다. 아르센 벵거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감독의 일화도 소개됐다. “펍에서 내 축구철학을 완성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는 그 장소에서 특별한 심리적 훈련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종종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구를 레프트윙으로 누구를 라이트윙으로 써야 할지를 결정했다는 거다.
 
펍의 상징은 간판에서 결정됐다. 때론 지역을 표상하고 때론 스토리를 요약한다. 왕의 얼굴(King’s Head), 여왕의 얼굴(Queen’s Head), 푸른 수퇘지(Blue Boar), 장미와 왕관(Rose & Crown), 깃발 든 양(Lamb & Flag) 등 수수께끼 같은 간판에는 내력이 있다. 펍에 간판이 처음 1393년 리처드 2세 때. ‘마을에서 맥주를 팔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맥주말뚝을 내걸어라’는 칙령이 내려진 데서 비롯됐다. 맥주말뚝을 걸지 않으면 맥주를 압수하겠다는 협박도 달았다. 이유는 세금 때문이었다. 맥주의 품질을 결정하고 세금을 매기는 검사관이 펍을 쉽게 알아보기 위한 방책이었다.
법으로 정식 지정된 건 1751년이었다. 펍 간판역사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중세 문맹의 시대 그저 술통이나 포도넝쿨 같은 그림으로 장소를 알린 경우도 적잖았다. 술통을 내놓거나 호프더미를 문밖에 꺼내 ‘이곳이 펍이다’를 알린 관습도 이즈음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맥주 한 잔에 녹아 있는 옛 왕조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500년 역사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그 내공에 대한 호기심도 발동한다. 한국술집에는 없는 스토리와 드라마가 있는 특별한 브랜드를 보는 듯하다.
euanoh@ieve.kr/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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