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진짜 내가 그 사람이 됐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본연의 나로 돌아와야 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아마 배우가 아니면 온전히 느끼기 힘든 기분일지도 모른다.
최근 드라마 ‘49일’을 마치고 지금 그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배우 배수빈을 만났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왔던 드라마를 끝내고 그는 산에 다녀오고 캠핑을 하는 등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캠핑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하는 그에게 이런 시간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그동안 연달아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작품을 해왔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의 휴식이지만 그래서 더 꿀맛 같이 느껴진다.

이번 작품 전에는 드라마 ‘동이’를 촬영 했다. 그러고 보니 배수빈은 사극과도 인연이 깊다. ‘주몽’‘바람의 화원’ 같은 작품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사극을 촬영하는 것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일 것 같다.
“사극에서 나온 기분? 마치 군복을 벗은 것 같은 느낌이다. 사극에 나오는 옷을 입는 것이 너무 힘들 때가 많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또 오랜 시간 한곳에서 촬영하다보면 막연한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 물론 배운 점도 많다. 이때의 경험들은 앞으로 연기 생활을 할 때 풍부한 자양분이 될 것 같다. ‘동이’를 마치고 단막극도 하고 바로 이번 작품에 들어가고, 그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
‘49일’에 대한 배수빈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작가에 대한 믿음은 물론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 대한 믿음도 이번 작품을 선택하게 했다. 그렇게 이번 작품을 선택하고 복수를 위해 사랑을 이용하고 오랫동안 자신 곁을 지켜온 연인을 버리는 나쁜 남자 민호를 연기했다. 종영한 후에도 결말을 두고 많은 이들에게 짙은 여운을 남겼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주제 자체도 굉장히 무겁고 기본적인 포맷도 매우 진중한 드라마였다. 특히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49일’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두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정작 나만 바뀌면 되는 것 같다. 요즘에는 ‘나나 잘하자’라는 생각을 한다.”

‘49일’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생각한 부분은 과연 내게도 진정으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이가 세 명 이상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부분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 과연 배수빈은 어떨까. 그는 자신 있게 세 사람은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첫 번째로 배우다 보니 팬 분들이 그래주실 것 같고 일을 하면서 만나 친구로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그래 줄 것 같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바라는 것 없이 내가 잘 되기를 기도해주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행복하다는 기준 또한 자기가 정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달콤한 음료를 마시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이렇게 햇빛 쏟아지는 나날들에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게 행복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극중 배수빈은 정말 못된 남자를 연기했다. 실제로도 좀 비슷한 면이 있을지 궁금했다.
“순하게 못된 것보다 소름끼칠 정도로 못된 남자를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하고 잘 파악해야 한다. 나도 그런 면이 조금 있다. 아는 만큼 상처 줄 수 있고 그만큼 배려안할 수도 있고 그런데 그렇게 안하는 거다. 그렇게 해봐야 나한테 돌아오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그는 사람을 신중하게 관찰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그럴까.
“사람을 보는 직관력이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사람을 연구하고 그런 일을 하다 보니 관찰을 많이 한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투, 습관, 태도, 말의 속도 그런 것들을 유심히 봤다가 연기에 많이 녹여낸다.”

쉬지 않고 달려온 그에게 배우 인생 전환점이 된 작품을 꼽아 달라고 했다. 모든 작품이 다 고맙고 기억에 남지만 그 중에 ‘바람의 화원’을 꼽으며 무척 고마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바람의 화원’을 하면서 여러 가지 기회가 왔다. ‘주몽’의 캐릭터가 워낙 강해서인지 이후 2년여 간의 공백기를 겪었다. 그런데 ‘바람의 화원’을 통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이 작품으로 그 공백기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주몽’ 속 사용이라는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이고 기억에 남고 고맙다. 하지만 당시 내가 인지도가 많은 배우가 아니어서 사용이 곧 내 이미지로 기억됐다. 재미있었지만 워낙 독특해 이후 일상적인 캐릭터를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배수빈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듯 했다. 그런 그의 좌우명이 궁금했다.
“‘Let it be’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프고 상처받고 조바심이 나더라도 결국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밑거름이 된다. 조바심 낸다고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 경우가 있다.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얻은 경험에서 오는 일종의 선물, 여유 같은 것들인 듯 싶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갖고 있는 것은 배우로서 굉장히 큰 자산이다. 배수빈도 서서히 자신의 색을 내고 있는 중이다. 30대의 나이가 주는 멋스러움도 그의 색에 한몫 하고 있다.
“남자 배우에게 30대란 여유도 있고 즐길 수도 있는 나이다. 20대의 치기도 없고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은 있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고 이제는 멋있을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 여유롭게 즐기고 남을 배려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익숙함이 싫어 그것을 항상 깨뜨리고 내게 온 모든 것들을 감사하고 그러고 싶은데 나 초차도 잃어버리거나 소홀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감사해 하고 싶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느낌으로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그의 내일을 설렘을 갖고 지켜본다.
“몸도 마음도 충전이 되면 또 좋은 작품으로 찾아오겠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를 정도로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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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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