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그를 만난다'는 짜릿함에 대하여 [인터뷰]
OSEN 이혜진 기자
발행 2011.06.03 16: 29

[OSEN=이혜진] 황정민이 출연한 작품을 보고 나면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오른다. 
‘역시.’
이 말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천편일률적인 배역으로도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뻔한 듯 보이는 내용으로도 시원한 청량음료처럼 감성을 톡톡 자극하는 내공이 있다는 뜻이다.

배우 황정민은 영화 ‘모비딕’에서 그의 내공을 십분 발휘한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사회부 기자 ‘이방우’로 분했다. 형사 주머니에 촌지를 찔러주며 특종에 군침을 흘리던 그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거대한 윤전기를 멈출 때, 관객의 가슴 속엔 뜨거운 그 무엇이 치솟는다.
자칫 작위적일 수 있는, 어쩌면 식상할 수 있는 기자 캐릭터를 그는 세심한 손길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영리하게 소화해 냈다.
“손 때 뭍은 수첩과 까만색 펜, 너저분한 서류들이 뒤엉킨 낡은 가죽 가방, 그리고 반코트. 모두 내가 설정한 거다. 모 언론사에서 기자체험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표현해 내고 싶었다. 스태프들은 이런 내 요구가 좀 귀찮았겠지만. 흐트러짐 속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엘리트 적인 면모. 그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새벽 불 꺼진 사무실에서 이방우는 뽀얗게 올라오는 담배 연기 속에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쓱쓱 써 내려간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오보로 1면을 장식하기 위해 그는 목숨도, 기자로서의 권위도 모두 내려놓는다.
공중 분해될지도 모르는 비행기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이방우처럼 배우 황정민은 대배우 답지 않은 소탈함으로, 자세를 낮추고 작품을 대한다.
“대한민국에선 흔치 않은 영화다. 음모론을 소재로 하고 있으니까. 시나리오 보고 바로 감독에게 같이 작품하자고 연락했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무조건 한다. 가릴 게 뭐 있겠나.(웃음).”
 
황정민은 늘 작품을 만날 때마다 ‘너는 내 운명’이라고 믿는다. 자신에게, 또 세상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황정민은 매 작품마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색깔의 감동을 선사하며 ‘배우 황정민’을 머릿속 깊이 각인시킨다.
“늘 관객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도 작품은 관객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30대 땐 ‘너무 유치하다. 관객들한테 더 뜻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걸 해야지’란 생각으로 작품을 택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건 나를 위한 거였다. 지금은 좀 더 편안하고, 관객과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매회 시청자들의 반응을 직접 느낄 있는 드라마는 매우 매력적이다. 좋은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 맡은 ‘이방우’란 캐릭터는 자극적인 재미나 진한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대한민국 소시민이 팍팍한 삶 속에서 느끼는 묘한 울분, 정의가 맞는 조용한 승리감을 깊은 울림으로 공명시킨다.
인공 조미료의 맛에 길들여진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이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영웅 노릇을 하려고 하지 않는 주연 배우들 덕분에 이 영화는 오히려 현실감 돋보이는 작품으로 태어났다.
이야기의 템포와 강약을 조절하며 배우 간, 캐릭터 간의 절묘한 앙상블을 이끌어낸 황정민의 가치는 그래서 더 돋보인다.
5월 말 황정민은 차기작 ‘댄싱퀸’ 촬영에 들어갔다. 이번엔 충무로 대표 팔색조로 손꼽히는 엄정화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 그의 각오는?
“유치함의 끝을 보여주겠다.”
역시, 끝까지 지나칠 만큼 겸손하고 솔직한 이 배우는 기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30대에는 늘 정직한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불혹을 넘기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믿음이 가는 배우로 관객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알파치노나 로버트 드니로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봐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나에게 ‘황정민 영화는 무조건 재밌다’는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다. 참 어렵겠지만, 그렇게 되도록 더 노력할 거다.”
 
매 작품 예측불허한 캐릭터로 색다른 감동과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배우 황정민. 그를 스크린에서 계속해서 만날 수 있다는 그 짜릿함은 생각보다 더 큰 것이었다.
영화 ‘모비딕’은 사건을 조작하는 검은 그림자, 목숨을 걸고 도망친 내부고발자, 그리고 진실을 파헤치는 열혈기자의 숨막히는 진실공방전을 담은 대한민국 최초 음모론 영화로 오는 9일 개봉한다.
tripleJ@osen.co.kr
<사진> 김영민 기자 ajyo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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