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의 아역으로 처음 얼굴을 알렸을 때 사람들은 이 배우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뒷골목 깡패로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줬을 때 관객들은 그의 연기에 혀를 내둘렀다.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그에게서, 우린 끝이 보이지 않는 가능성이 엿봤다.
배우 진구가 영화 ‘모비딕’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정부위의 정부, 실체 없는 거대한 세력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다.
“이게 다 조작된 거 라면요?”

영화 ‘모비딕’은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다. 1994년 11월 발암교에서 의문의 폭발사건이 일어나고,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는 특종 냄새를 맡고 발 빠르게 취재에 돌입한다. 바로 그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윤혁(진구)이 이방우를 찾아온다. 의문의 디스켓들을 잔뜩 들고서.
대한민국 최초로 음모론을 다룬 ‘모비딕’은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번 영화는 윤혁의 입에서 시작해 그의 입에서 마무리된다.
1990년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을 모티프로 만든 이 작품은 민간인 사찰 임무에 환멸을 느낀 보안사병이 사찰 자료를 들고 세상으로 커밍아웃하며 대중에게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 역사적 사실을 고스란히 차용했다.
그래서일까. 진구는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현실성 높은 연기를 펼쳐 보인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어려웠다. 음모론의 음모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하지만 윤혁 캐릭터는 이해하기 쉬웠다. 그래서 더 애착을 가지게 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도 윤혁이 양심선언을 하는 모습이다.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쉽고 빠르다. 관객들에게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다.”

‘비열한 거리’, ‘마더’ 등 유난히 센 캐릭터를 많이 맡아온 진구. 그의 필모그래피엔 재미있고 부드러운 캐릭터가 분명 존재하지만 ‘나쁜 남자’로 승부수를 띄웠을 때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꼭 강한 역할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내가 이해를 할 수 있나 없나를 따져 작품을 선택한다. 부드러운 캐릭터도 해봤는데 관객들에게 덜 사랑받은 것일 뿐. 이게 내 운인가 보다.”
김혜자, 황정민 등 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때도 주눅 드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당돌해 보이는 그는 선배들과 연기할 때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정민선배랑 여관방에서 싸울 때 감정이 남달랐다. 대선배랑 연기하면 날 끌어당기는 에너지 같은 걸 느낀다. 김혜자 선배님과 연기했을 때도 그랬다. 내가 한 것 그 이상으로 화면에 나온다. 그분들의 내공 덕이다.”
그렇다면 그는 연기를 할 때마다 어떤 각오로 임할까.
"돈 내고 보시는 분들 돈 아깝게는 안 해야죠.(웃음)"

거침없는 말투, 호탕한 웃음. 진구는 시종일관 자신 있는 태도로 인터뷰에 임했다. 영화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까. 정답은 작품과 배우 진구로서의 삶, 모두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지금 나의 모습에 100% 이상 만족한다. 데뷔도 그렇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서른 두 살 진구의 모습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거 같다. 인간답게 인생을 즐기면서 남한테 해는 끼치지 않는. 내가 생각했던 어른보다 더 멋진 어른이 되어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그라고 왜 상처가 없을까만 진구는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 믿는 우직한 스타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농구 동호회 회원들과 모여 치열하게 땀을 흘리고, 뒤풀이 자리에서 술 한 잔 기울일 때면 배우의 꿈을 꾸는 동생들에게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상담을 해준다.
“오디션에서 떨어질 것 같다며 걱정하는 동생에게 ‘포기 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도 많이 낙방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게 약이 되더라. 나를 자른 감독, 작품 뒤돌아보지 말자, 생각도 말자 했는데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연기 못하는 내가 그때 영화를 찍었다면 작품에도 누가 되고 연기 못하는 배우로 낙인찍혔을 텐데 그분들 덕분에 성장했다.”
배우 진구는 지금 행복하다. 배우로서 탄탄하게 자기만의 역사를 써나가서, 기대 보다 더 좋은 자신으로 살고 있어서.
“나도 바르게만 살지는 않았다. 안 좋은 일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나니 안 좋았던 일 조차도 행운이라고 생각되더라. 그때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 행복하다는 생각 못 했을테니까. 감사하면서 사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
진구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모비딕’의 윤혁을 떠나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다. 그가 선택한 다음 작품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다. 그가 춤, 노래, 연기 삼박자를 고루 갖춘 업그레이드 된 ‘진구’로 돌아올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tripleJ@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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