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꽃섬, 쓰레기섬
OSEN 이은화 기자
발행 2011.06.08 15: 45

낯익은 세상 
황석영|236쪽|문학동네
1980년대 난지도 빈민 속으로

황석영 표절시비 1년만에 신작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새벽부터 계속되던 중심가와 상업지구의 쓰레기작업이 여느 때처럼 오전 아홉 시 무렵에 끝났다 … 이 동네 사람들은 쓰레기 주워서 먹구산다. 느이 식구는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우리 식구는 언제나 농사만 짓는다. 전보다 훨씬 힘들어졌지만. 저기 밭들은 모두 샛강말 농부들 건데, 너희도 농사를 짓는다구?” 
꽃섬에 모여든 소년들의 대화는 의외로 담백하다. 여기선 쓰레기장을 꽃섬이라 부른다. 더러운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비유한 표현이 아니다. 그대로의 쓰레기장, 폐기처분된 모든 물건들이 몰려들어 산을 이루는 흉물스러운 쓰레기장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고 낯선 공간, 하지만 세계 어느 도시를 찾아가든 만날 수 있는 그곳은 그래서 ‘낯익은 세상’이다.
 
작가 황석영이 신작 소설을 냈다. ‘강남몽’ 표절 시비가 일어난 후 1년만이다. 1980년대 서울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인 꽃섬을 배경으로 그곳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사는 빈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에는 소비로 포장돼 끓어오르는 욕망이었던 쓰레기로 대변된 문명의 이면에 관한 냉소가 있다. 그 앞엔 최하층 사회 속에서 자아 형성기를 보내는 한 소년의 성장 드라마가 놓여 있다. 주인공 소년 딱부리에게 꽃섬은 한편으론 빈곤하고 더럽고 삭막하기 짝이 없으나 다른 한편으론 경이로움이 가득한 성장환경이다. 비록 산동네이긴 하나 도시에 속해 있었던 딱부리는 어느 날 갑자기 쓰레기장이라는 “도시와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왔고, 그 속에서 초자연적인 것과 조우하며 인간과 사회 학습의 길로 나아간다.
폐품 수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애스러운 풍속은 소설 속에 적나라한 형체를 드러낸다. “쓰레기들은 더럽고 볼썽사나워 보였지만 검고 희고 붉고 푸르고 … 길쭉하고 흐느적거리고 뻣뻣하고 처박히고 솟아나고 굴러내리고 매캐하고 비릿하고 숨이 막히고 코가 쌔하고 구역질나고 무엇보다도 낯설었다.”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결코 멈출 수 없는 파국의 이 행렬에 대한 작가의 탄식은 쓰레기장으로 이어졌다. 만들고 버리는 욕망의 종착지인 셈이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된 그곳에서 인간의 꿈과 역량까지 탕진하는 현장을 목도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삶은 있다.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일상이 있고,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감정이 있고, 그 속에서도 멈출 수 없는 성장 이야기가 있다.
가장 빈곤한 곳에 가장 풍부한 것이 있더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는 그 지점에서 나왔다. 문명으로부터 폐기된 사물이 쌓여 있는 인간의 종착지에 결국 문명에 저항하는 힘의 원천이 있더라는 일깨움도 덧입혔다.
소설이 열어둔 곳은 ‘천국보다 낯설고 지옥보다 낯선’ 세상이었다.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 포기할 수 없는 꽃섬의 내일은 그래서 여전히 낯익은 세상이었다.
euanoh@ieve.kr /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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