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잠실 LG전. 한화는 억울하고 황당한 패배를 당했다. 1점차로 뒤진 9회 2사 3루. 한화 3루 주자 정원석은 LG 투수 임찬규가 와인드업 자세에서 머뭇거린 틈을 놓치지 않고 홈으로 쇄도했다. 당황한 임찬규는 투구가 아닌 송구로 홈으로 던졌다. 명백한 보크. 그러나 4심 누구도 보크를 발견하지 못했고 한대화 감독이하 한화 코칭스태프가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경기는 허무하게 끝났다.
한 감독은 "이건 그냥 못 넘어가겠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다음날 한 감독은 언제 그랬냐는듯 특유의 미소를 되찾은 상태였다. 오히려 "심판들이 일부러 그랬겠냐. 우리도 그렇고, 심판들도 그렇고 모두 운이 없었다"며 "이 문제로 더 이상 말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당초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한화 구단도 "감독님께서 처음부터 제소를 원치 않으셨다. 심판들이 오심을 인정한 만큼 더는 일이 커지길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한 감독으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잠실 LG전에서 한 감독은 폭발했다. 경기종료와 함께 구심에게 짧고 굵은 한마디를 하고 뒤돌아섰다. 이른바 '예끼' 사건이다. 한 감독의 한마디로 다음날 심판위원장이 직접 대전까지 내려올 정도로 뒷말이 많았다. 하지만 한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판정을 좀 제대로 봐달라"는 것이 한 감독의 부탁 아닌 부탁이었다. 심판들의 일관성없는 판정에 한화와 한 감독은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한 감독은 뒤끝이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얼마 뒤 한 감독은 우연히 그 구심을 화장실에서 만났다. 한 감독은 손을 씼던 구심의 등을 한대 치며 "내 마음 아닌거 알지?"라며 오해를 풀었다. 실제로 한 감독은 지난 1일 대전 삼성전에서 이여상이 구심의 스트라이크 판정 여부에 불만을 품자 클리닝타임 때 리플레이로 그 장면을 다시 봤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걸친 것을 확인하곤 오히려 이여상을 나무랐다. "항의를 하더라도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는 게 한 감독의 지적이었다. 판정에 대한 뒤끝이 없었다.
이날 경기에서 한화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야구로 동점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어이없는 오심에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허탈함이 가득한 순간. 한 감독은 폭탄주를 마시며 다음날 경기를 구상했다. LG 선발은 에이스 박현준이었고, 한 감독은 2군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동진을 불러올렸다. 지난달 5일 고동진을 2군으로 내려보낸 뒤에도 한 감독은 "고동진은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라며 기대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고동진이 지난 4월9일 대전 LG전에서 박현준을 상대로 3타수 1안타로 활약한 것을 떠올렸다.

이날 경기 전 한 감독은 전날 오심을 일으킨 4심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그들과 웃는 낯으로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했다.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훈훈한 풍경. 이미 지난 일은 잊고 눈앞에 다가올 경기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전날 1군으로 올린 고동진을 7번타자 우익수로 기용하며 최진행을 지명타자로 돌렸다. 고동진은 35일만의 1군 복귀전에서 2회 선제 결승 투런 홈런 포함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오심으로 내준 패배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경기를 구상한 한 감독의 통음의 밤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그날밤 폭탄주 6잔을 마시며 분을 삭힌 한 감독은 이튿날 6위 자리에 올랐다. 5월 이후 6위는 한 감독 부임 후 처음이다.
한 감독은 "오심이 난 경기에서 우리팀 자체적으로도 주루플레이 미스와 수비 실책 등이 많았던 경기였다. 우리가 못한 측면도 있다"며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지난달 사건 이후에도 한 감독은 선수들에게 "우리 전력이 약하니까 상대팀도 심판들도 쉽게 보는 게 있다. 이런 걸 이겨내려면 결국 팀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한화는 급상승세를 탔다. 이번 오심 사건도 어쩌면 팀이 반등하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한 감독은 3연전 마지막 날 승리 직후 "선수들의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뜻하지 않은 오심 사건. 하지만 한대화 감독은 현명하게 대처하며 인심을 사고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시켰다. 야왕의 진면목이 나타난 대목. 도대체 야왕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것일까.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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