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류현진밖에 투수가 없냐? 너희도 한화 투수 아니냐!".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인 지난달 8일 대전 넥센전. 선발 류현진이 7이닝 1실점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스코어는 9-1로 8점차 리드. 그러나 류현진이 내려가자마자 한화 마운드는 급격히 흔들렸다. 8~9회 각각 3점씩 허용하며 11-7로 진땀승을 거둬야 했다. 승리했지만 한대화 감독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튀어나왔고, 정민철 투수코치도 분을 참지 못했다.
류현진이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정 코치는 투수들을 집합시켰다. 이 자리에서 정 코치는 의자를 집어던지는 '액션'을 취하며 선수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정 코치는 "한화는 류현진밖에 투수가 없냐. 너희도 한화 투수가 아니냐"며 강하게 질책했다. 정 코치는 일부러 투수조장 박정진에게 "정말 이렇게밖에 하지 못 하겠냐"고 했다. 박정진은 정 코치의 액션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앞으로 잘 하겠다"고 답했다.

그날 이후부터 한화 마운드는 확 달라졌다. 한화는 이날 경기 후 27경기에서 15승12패를 거두고 있다. 이날 경기 전까지 30경기에서 5점대(5.59)였던 한화의 팀 평균자책점은 이후 27경기에서는 3점대(3.94)로 내려갔다. 한 달 사이에 평균자책점을 1.65나 끌어내렸다. 정민철 코치의 호통이 선수들을 깨운 것이다. 양훈 김혁민 안승민 장민제의 잠재력이 동시폭발하면서 류현진과 함께 '독수리 오형제' 선발진을 구축했고, 불펜도 점차 안정화됐다.
올해 한화 마운드는 류현진에 대한 의존도를 완전히 낮췄다. 지난해 한화는 류현진이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팀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한화는 류현진이 선발등판한 25경기에서 16승8패1무로 승률 6할4푼을 기록했다. 류현진이 나오는날 만큼은 최고의 팀이었다. 그러나 류현진이 나오지 않는 날이 문제였다. 류현진이 나오지 않은 108경기에서 한화는 33승74패1무로 승률이 3할8리밖에 되지 않았다. 류현진이 나오지 않으면 그건 절망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화는 올해 류현진이 선발등판한 11경기에서 5승6패로 오히려 5할도 되지 않는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였다면 최하위 중의 최하위로 고꾸라질 성적이다. 그런데 올해 오히려 류현진이 나오지 않은 45경기에서 19승26패1무로 승률 4할2푼2리라는 경쟁력 있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양훈 김혁민 안승민 장민제처럼 기본적으로 승부가 될 수 있는 경기를 만들어주는 안정된 선발투수들이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민철 코치는 "우리 투수들은 모두 좋은 투수들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투수인지를 몰랐다"며 "(류)현진이가 정말 대단한 투수인 건 누구나 다 안다. 팀 동료로서 박수치는 건 좋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럴수록 속으로는 배아파하고 피눈물흘리면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정 코치는 항상 꾸준하게 에버리지를 낼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모습을 투수들에 주문했다.
공교롭게도 정 코치의 호통 이후 기간만 추릴 경우 한화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은 전체 3위(3.68)로 뛰어오른다. 놀랍게도 이 기간 동안 투구이닝은 156⅔이닝으로 전체 1위. 선발투수 평균 투구이닝으로 할 경우 5.80이닝으로 '투수왕국' KIA(5.86)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정 코치 말대로 한화 투수들은 가능성있는 좋은 투수들이었다. 다만 그동안 알껍질을 깨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제 한화 마운드는 류현진만 있는 팀이 아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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