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맥주가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600만 관중을 돌파한 한국프로야구 야구장에서 맥주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전에 회사원 김대욱(30) 씨는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김 씨는 500ml 맥주 한 잔에 3000원 하는 맥주 4잔을 사서 친구들과 야구를 보면서 마셨다.

2회 한화 고동진의 홈런에 친구들과 함께 기분좋게 '짠'을 하며 한 모금 두 모금 홀짝홀짝 마신 맥주는 7회를 넘어 4명이서 10잔 정도를 마셨다. 취기도 어느 정도 올라와서 응원은 더 신나 보였다.
그런데 이 순간 그는 맥주를 더 마셔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야구장 분위기에 취해 더 마시게 되면 과음을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KIA-SK전에서는 술 취한 관중이 던진 맥주캔이 경기장에 떨어지며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우익수로 나선 이종범은 맥주캔이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것에 격분하며 술 취한 다른 관중과 말다툼을 벌이며 KBO로부터 경고 조치를 당했다.
잘잘못을 떠나 문제의 발단은 술이 든 맥주캔이었고, 술 취한 관중과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단순히 이번 일 뿐이 아니라 올 시즌에만도 수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일로 경기장을 찾은 수 많은 어린이 야구팬들이 보지 않아야 할 장면들을 보게 됐다. 함께 온 부모들도 난감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해 했다.
그러나 미국프로야구(MLB)가 열리는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맥주를 마신다. 이들에게 '맥주는 음료수 또는 물이다'는 농담도 한다. 그렇지만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메이저리그는 경기장 입장 시 주류 반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구단마다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보통 주심이 1회 플레이볼을 외친 후 정확히 2시간이 흐르거나 또는 7회초를 마친 스트레칭 타임부터는 경기장 내에서 맥주 판매가 금지된다. 4회에 두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맥주 판매가 중지된다. 스포츠 바를 포함해 우리와 같이 경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파는 사람 모두가 이 순간부터는 보기 힘들다.
메이저리그 경기장 내 맥주 판매 중지와 관련해서는 지난 1997년부터 2005년까지 9년 동안 뉴욕 메츠 직원으로 일한 데니얼 김(39)을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데니얼은 "메이저리그에서는 7회 이후에 맥주 판매가 금지된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1회부터 맥주를 마신 관중들은 7회 정도가 되면 취기가 많이 올라오게 된다. 만취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마실 경우 경기장 난동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7회 이전에 한 사람이 10잔 정도 사놓고 마시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규정상 한 사람당 한번에 두잔 이상은 구입할 수 없다.
가장 주요한 것은 협회와 구단의 소통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각 구단에 맥주를 포함한 모든 알코올에 대해서 판매 중지 권한을 줬다. 그래서 경기 중에 패싸움이 벌어졌다거나, 안전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1,2회에도 판매 중지를 할 수 있다. 더불어 술이 너무 취했거나, 술 주정을 하는 사람, 거친 언행을 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경기장 내 안전 관리자 또는 경찰에 의해 곧장 퇴장을 당한다.
데니얼은 "맥주를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에게 7회 이후 맥주 판매 금지는 어쩌면 가혹한 고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재미있게 즐기고 안전하게 귀가하는 것도 구단 및 협회에서 챙겨야 하는 부분"이라는 뜻을 전했다.
만약 연장전에 들어가면 맥주 판매가 다시 가능해질까. 한국프로야구는 연장 12회까지라는 규정이 있지만 메이저리그는 무제한 연장에 들어간다. 그래서 가끔은 17이닝, 심지어 20이닝을 넘길 때도 있다. 데니엘은 "연장 20회, 30회에 가도 맥주는 안 판다"고 말했다.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컵스 한국지역 스카우트를 맡고 있는 애런 타사노(36) 역시 "메이저리그에서는 7회 이후 맥주를 마실 수 없다"면서 "한국의 경우 맥주를 많이 마시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최근 경기장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한 만큼 한국도 한번쯤 생각해 볼 내용이다"는 뜻을 나타냈다.
물론 소비자의 권리를 내세워 어느 시점 이상일 때 맥주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이물질을 투척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과도한 음주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7회 이후 맥주 판매를 금지하는 메이저리그 사례를 들은 정금조 운영팀장은 "최근에 일어난 불미스런 일도 과도한 음주에서 비롯됐다"면서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당장 시행할 수는 없고 이번 시즌을 마치고 윈터 미팅을 통해 회의해 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과연 2012시즌부터 한국야구장에서도 7회 이후 주류 판매가 금지될까. 구단에서는 수익을 감수해야 한다. 관중들 역시 맥주를 마시고 싶은 기본적인 권리를 잃게 된다. 그러나 어떤 길이 야구장 문화 발전에 옳은 길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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