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영어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인 선수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더라. 그 습득력과 적극성에 '아, 우리 아들에게 야구를 시켜도 되겠구나' 싶었다".
성장이 고교 1학년 시절 멈췄다는 악평. 지난 시즌 후에는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신고선수 계약으로 6월을 기다렸던 유망주. SK 와이번스 5년차 외야수 박윤(23)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 다시 발돋움을 시작했다.

박윤은 지난 11일 잠실 두산전서 7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5타석 4타수 1안타 1볼넷 2득점을 기록했다. 10일 두산전 9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데뷔 첫 타석에서 안타를 신고했던 그의 2경기 성적은 4할(5타수 2안타) 출루율 5할이다.
특히 박윤은 박종훈 LG 트윈스 감독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윤동균-윤준호, 이해창-이준, 유승안-유원상(한화) 등의 전례도 있었고 LG 외야수 정의윤 또한 지난해 넥센 2군 감독을 맡았던 정인교씨의 아들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30년 동안 아직 부자가 선수로서 모두 걸출한 성적을 올린 예는 없다.
1983년 프로야구 첫 신인왕인 동시에 허슬플레이를 자랑하는 교타자로 명성을 날렸던 박 감독과 달리 박윤은 거포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이미 상인천중 2학년 시절 문학구장 담장을 넘기는 홈런포를 쏘아올렸던 박윤은 인천고 1학년 시절에도 중심타선을 지키며 주목을 받았다.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은 박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1학년 때 이미 청소년 대표팀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대한야구협회에서 박윤의 발탁을 많이 고민하다 '윤이는 2,3학년 때 다시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라며 다른 학교 3학년생을 뽑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박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더라".
일찍 거포 포텐셜을 뽐냈으나 고교 1학년 시절 이후로 성장을 멈췄다는 것이 당시 아마추어 야구계의 평가였다. 이후 박윤은 2006년 8월 2차지명을 통해 연고팀 SK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 코치로 재직했던 박 감독은 박윤의 입단과 함께 두산 2군 감독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부자가 한 팀에서 있던 적은 아직 없다.
박윤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박 감독은 아들의 적극성과 빠른 습득력을 높이 평가했다. 박 감독은 미국 야구유학 당시 아들에게도 선수 생활을 허락했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야구유학을 갔을 때 윤이도 구장에 자주 놀러왔다.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윤이가 외국인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고 어휘력도 금새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 어린이들이 어학 습득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많이 빨아들여 제 것으로 만드는 모습이 빨랐던 것 같다. 그 습득력과 먼저 다가서는 적극성에 아버지가 아닌 야구인으로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프로 입단 후 박윤은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아쉬움을 비추기도 했다. 장타력 면에서도 정확성 면에서도 2군 최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 결국 지난 시즌 후 박윤은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SK와 신고선수 계약을 맺었다. 프로야구 선수 박윤의 전환기였다.
2군에서 34경기 3할4리 1홈런 12타점을 기록한 박윤은 지난 10일 다시 정식계약을 맺고 처음 1군을 밟았다. 홈런보다는 2,3루타를 양산하는 중장거리 타자로 자라난 박윤은 데뷔 첫 두 경기서 모두 안타를 때려냈다. 김성근 감독 또한 "괜찮았어"라는 짧지만 의미있는 한 마디로 박윤을 높이 평가했다.
"통통 튀어오르는 듯이 달리는 것도 똑같더라. 정말 DNA 도둑질은 못하는 것 같다. 가장 흡사한 것은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OB 시절 박 감독을 기억하며 김 감독은 박윤의 훈련 모습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체된 유망주로 평가받던 박윤은 아버지를 빼닮은 성실성으로 1군에서 제 자리를 만들고 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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