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붉게 충혈이 되고 마른기침을 하는 정겨운을 만났다. 이기적인 기럭지에서 날렵한 모델 간지가 풍겼고 밤톨 같이 예쁜 머리 때문인지 귀여운 소년 느낌도 났다. 허우대는 이리도 멀쩡한데 연일 계속된 촬영 강행군 탓에 목감기와 피로가 겹친 정겨운은 간간히 콜록콜록 대면서도 많은 속이야기를 풀어놨다.
정겨운은 KBS 2TV 수목드라마 '로맨스타운'의 남자 주인공으로 성유리와 커플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 2004년 연기를 시작한 이래 소위 말하는 '1번' 남자 주인공은 처음이다. 무수한 작품에 출연했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1번 남주'가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늘 재미있어하며 연기를 해왔다는 그.
"처음 해보는 1번 남주라 좋죠. 사실 너무 좋죠." 쑥스러운 듯 하지만 기쁨을 감추진 못했다. "메인이란 생각에 사실 부담도 많아요. 어깨가 무겁죠. 그래도 우리 드라마 특성이, 극중 여러 캐릭터들이 골고루 비중을 나눠 갖고 가는 작품이라... 다행이에요. 저 혼자 다 끌고 가야하는 작품이었다면 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이 여러 캐릭터들을 다 살려내고 계셔서 개인적으로는 좀 부담이 덜 되는 것 같아요." 데뷔 후 첫 메인 주연으로서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가 내놓은 대답이다.

그런데 그에게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남자주인공이 너무 약하다는 일각의 시선들 때문이다. 매일매일 힘들게 촬영하고 있는 배우로서는 무척이나 힘이 빠질 만한 상황이다. "드라마 게시판이나 기사 댓글들을 보는 데요... 남자 주인공이 너무 약하다고, 그래서 시청률 안 나온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속상하죠. 그런 글들 보면.."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는 건 그를 아끼는 팬들과 지인들의 든든한 응원 때문이다.

"'로맨스타운'은 정겨운이 아니었으면 더 확 떴을 드라마다라는 얘기들을 듣고 솔직히 너무 속상했어요. 그럴 때면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서 막 물어봐요. '내가 이 드라마에서 정말 그렇게 못해?', '내 비중이 별로야?'라고 물어보면... 친구들은 '너 밖에 안 보여. 화면발도 너무 잘 받아'라고 힘을 주는 말을 해줘요. 그러면 다시 좀 힘을 내게 되죠. 그게 만약 거짓말이라도 응원해주는 말을 들어야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는거죠. 사람이니까.."
고충이 꽤 많은 가보다. '로맨스타운'은 MBC '최고의 사랑'과 SBS '시티헌터'에 밀려 동시간대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시청률은 10%남짓... 수치만으로 본다면 그리 낮은 성적도 아니다. 한 자릿수 시청률에서 헤매는 진짜 '망한' 드라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최고의 사랑'이나 '시티헌터'와 시청률 차이도 크지 않은데 꼴찌라는 그 낙인 때문에 아쉬움이 큰 건 어쩔 수 없다.
"이제 드라마가 중반까지 밖에 안 왔으니까. 앞으로 더 좋은 모습들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로맨스타운'은 총 20부작이다. 이제까지 10회분이 방송됐다)라고 말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남주가 약하다는 평가들에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초반에 '뚱건우'였다가 유학 다녀와서 완전히 변신을 한 거잖아요. 그래서 뚱뚱하고 자신 없던 건우가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보여줘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던 거 같아요. 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거죠." 극중 건우(정겨운 분)의 까칠한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말투도 더 세게 간다는 것이 스스로도 판단미스였단 얘기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작가님이 표현해주시는 건우 캐릭터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고요. 저도 처음엔 '이 캐릭터를 어떻게 살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점차 그 느낌을 알게 됐죠. 후반부로 갈수록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보여드릴 게 많으니 기대해주세요."

물론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배우들도 간혹 있다. 데뷔작에서 주연을 맡거나 연기 경력이 짧은 신인인데도 1번 주인공만 도맡는 케이스들이다. 하지만 정겨운처럼 준비된 배우라야만 주인공 타이틀이 더욱 값지고 빛이 나는 게 정석이다. 데뷔 이후부터 큰 공백기 없이 여러 작품에 꾸준히 출연했던 그다. 최근작들만 따져도 '싸인'의 열혈 형사, '닥터챔프'의 유도 선수, '천만번 사랑해' '미워도 다시 한번'까지...최근 2년 새 출연한 드라마들이다. 연기가 따라 주지 않는다면 정겨운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가 자주 찾아올 수 있었을까. 많은 감독들이 '쓰고 싶어 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 정겨운이다.
그렇기에 정겨운에게 '로맨스타운'은 특별한 드라마다. 처음 해보는 1번 남주 역할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각의 비난과 지적들 때문에 솔직히 지치기도 하지만 인터뷰 말미, 정겨운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그래도(힘들어도) 1번 남주하고 싶죠. 앞으로도 계속... 만날 2번, 3번만 했었는데.. 좋아요. 정말 제 것 같아서. 하하하."
issue@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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