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부임 이후 매년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며 최약체 평가까지 받았던 팀을 포스트시즌 단골 진출로 이끌었던 감독. 올 시즌을 제외하고 매년 5할 이상의 성적을 보장하던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이 충격적인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김 감독은 13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며 지휘봉을 놓았다. 2003년 10월 10일 김인식 감독의 뒤를 이어 두산 감독직을 맡은 뒤 총 960경기서 512승 16무 432패를 기록했다. 역대 8번째 500승 이상을 달성한 감독으로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서는 9전 전승 금메달 기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올 시즌 김 감독은 잇단 투타 밸런스 붕괴로 인해 7위까지 떨어지는 비운을 맛보았다. 결국 팀 성적 추락에 가장 먼저 감독이 희생되던 현상에 김 감독도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6번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3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 7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5할 이상을 기록하던 감독이 반 년도 안되어 낙마하는 케이스가 된 것.
사실 김 감독은 스스로 지난 시즌서부터 지휘봉을 내려놓는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부임 후 1기 시절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을 중용했고 2기 시절 세대교체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김 감독이지만 한국시리즈 우승 타이틀이 없다는 점은 감독 본인에게도 커다란 자격지심을 가져다 준 것.
지난 시즌 후반기 김 감독의 롯데행 루머가 돈 것도 그와 연관이 있다. 김 감독이 자진사퇴 후 롯데로 이동하면 두산이 양승호 당시 고려대 감독(현 롯데 감독)을 수장으로 앉힌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러나 양 감독이 롯데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이는 없던 일이 되었다.
연이어 김성근 감독의 SK에 발목을 잡힌 것 또한 김 감독에게는 엄청난 심적 부담을 안겨줬다. 2007년 한국시리즈서 2연승 후 내리 4연패했던 김 감독은 2008년 1승 4패, 2009년 플레이오프서 2연승 후 3연패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후 김 감독의 선수단 운용 전략은 김성근 감독과 유사해지기 시작했다.
SK가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타 팀에서도 연습량이나 경기 운용을 김성근 감독과 유사한 방안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 당사자는 그에 대해 부인했으나 외부에서는 "김경문 감독의 전략이 김성근 감독의 그것과 유사해진다"라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졌다. 2009시즌부터의 모습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없던 김 감독은 점차 선발 투수의 조기 강판 및 계투진 조기 투입 등의 전략을 택했으나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지난해 이용찬, 올 시즌 임태훈 등 마무리 투수가 경기 외적인 일로 전열 이탈하며 부하가 더해진 것도 컸다.
타선 또한 어느 순간 찬스 상황에서, 특히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에서 제대로 된 공격을 발휘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일이 잦아졌다. 더 많은 중심타자 감을 원해 2009시즌 이후 이성열, 유재웅 등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고영민을 공-수-주 모두 활약할 수 있는 3번 타자 감으로 키우고자 했던 김 감독이었으나 이는 모두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5년차 시즌이던 2008년에 우승을 거둔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속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네. 야수층도 두꺼워졌고 투수층도 괜찮아졌다는 생각이니 이제 팬들 성원에 보답해야지". 2008시즌 이후 매년 시즌을 준비하며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던 김 감독. 결국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비운의 장수로 말을 내려오고 말았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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