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3번을 달고 싶었어요. 마쓰나카 노부히코(소프트뱅크)의 등번호인데 (김)민성이가 안 주더라구요".(웃음)
누구의 잘못도 없이 하나의 신장만을 갖고 태어난 사나이. 그러나 그는 아랑곳없이 한계를 넘어서 1군에서 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넥센 히어로즈의 좌타자 조중근(29)은 굳게 입술을 깨물며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상인천중-동산고를 거쳐 지난 2001년 SK에 입단한 조중근은 2000년 세게 청소년 선수권 우승 멤버 중 한 명이다. 그리고 SK 입단 후에는 '2군의 배리 본즈'로 불리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2006년 이호준의 병역 공백으로 생긴 1루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이듬해 현대로 트레이드되었다.
히어로즈로 팀 이름이 바뀐 이후에도 1군 풀타임리거로 성장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비췄던 조중근. 올 시즌 시작이 다소 늦었던 조중근은 24경기 3할1푼3리 3홈런 10타점(15일 현재)을 기록하며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4일에는 상대 선발 페르난도 니에베의 공을 좌측 담장 너머로 날려보내며 만회 타점을 올리기도 했다.
▲ 하나 뿐인 신장? 다른 이도 여름에는 힘들 것
팀의 연패 속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조중근이 1군에 자리잡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러나 그는 14일 때려낸 홈런보다 1-4로 뒤지고 있던 6회 무사 1,3루 찬스를 2루수 앞 병살타로 날려버렸다는 데 팀에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사실 당시 타구는 힘없이 흘러갔다기보다 2루수 오재원 근처에서 강하게 튀어오른 공이었다. 마침 오재원은 좋은 수비로 이를 병살 연결했다. 조중근이 못 쳤다기보다는 운이 없던 케이스.
"에이, 홈런을 쳤으면 뭘 해요. 팀이 패했는데요. 찬스 상황에서 훅 당겨쳤는데 그게 어떻게 그리로 향하더라구요. 많이 아쉽습니다".
신장은 체내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진대사에 반드시 필요한 장기다. 두 개의 신장 중 하나가 없다는 점은 그만큼 체내 피로 누적도 등이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높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일반인도 견디기 힘든 생활이지만 조중근은 긍정적 태도를 보이며 어엿한 프로야구 선수로 살아가고 있다.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요. 그저 '다른 선수들도 여름에는 힘들겠지'라고 생각해요. 땀이 많이 나기는 하지만 물도 많이 마시면서 여름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 중입니다".
아직 조중근은 1군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채 2군을 오락가락하며 뛰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넥센은 전남 강진에 2군 캠프를 차렸다. 넥센에서 2군행은 그야말로 '유배'와 같다.
"강진은 정말이지. 너무 먼 것 같아요.(웃음) 1군에 올라가거나 2군으로 내려갈 때는 거의 명절날 귀경길 같다고나 할까요". 한계를 넘어 프로야구 선수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만큼 긍정적 자세와 어조로 이야기하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 원래는 3번 달고 싶었지만…
조중근은 지난해까지 45번을 달다가 올 시즌에는 55번을 배번으로 삼았다. 선수에게 등번호를 바꾼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 조중근에게 등번호를 바꾼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플레이하고 싶어서요. 마침 55번을 달던 (이)대환이 형이 LG로 가면서 55번을 달 수 있었습니다. 55번 하면 마쓰이 히데키(오클랜드)의 대표 번호잖아요. 저도 마쓰이 전성시절처럼 잘 치고 싶은 55번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원래 조중근이 탐냈던 번호는 따로 있다.
"원래는 3번을 달고 싶었어요. 마쓰이보다는 마쓰나카와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3번의 주인인 (김)민성이가 못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웃음) 그래서 택한 번호가 55번이에요".
마쓰이와 마쓰나카 모두 정확성과 장타력으로 명성을 떨쳤던 일본의 스타 플레이어들. 그러나 조중근이 정말 존경하는 인물은 바로 김기태 LG 2군 감독이다. SK 시절 김 감독과 인연을 맺었던 조중근은 장타력과 정확성, 그리고 리더십까지 모두 갖췄던 대선배를 다시 떠올렸다.
"제가 신예 시절 김기태 선배 방졸이었어요. 아직도 김기태 선배는 제가 존경하는 선수이자 롤모델입니다. 마쓰나카처럼 3번을 달고 싶다고는 하지만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은 김기태 선배입니다".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는 메이저리그 통산 87승 및 노히트노런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타격의 전설' 장훈은 화상으로 인해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되었으나 왼손잡이 타자로서 일본 야구계의 전설이 되었다.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 속 어느새 우리 나이 서른이 된 조중근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다시 한 번 방망이를 세게 쥐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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