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인천, 이대호 인턴기자] 한때 야구장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젠 남녀노소 모두 즐겨 찾는 공간으로 바뀐 지 오래다. '야구장의 꽃'이라 불리는 치어리더들은 관중석에서 화려한 몸짓으로 관중들에게 그라운드의 매력을 한껏 전달한다. 또 여자 팬들끼리 야구장을 찾아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고가의 카메라로 선수들의 사진을 담는 모습은 더 이상 신기한 장면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라운드'는 여자들의 발길이 쉽사리 내주지 않는 낯선 공간이다.
남자들만의 공간인 '녹색 다이아몬드'. 하지만 유일하게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여자가 있으니 바로 그라운드의 숨겨진 진주인 배트걸(경기 진행 보조요원)이다. 배트걸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어느 새 나타나 선수들에게 배트를 건네고, 주심의 손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신호가 나면 달려가 공이 담긴 바구니를 전달해야 한다. 각 구단은 팀의 개성에 맞게 미모의 배트걸을 두고 있다. 이중 SK 와이번스는 홈경기마다 여자들이 야구와 좀 더 친해질 기회를 제공하고자 '1일 배트걸 체험' 행사를 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지원을 하면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SK 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팬들의 반응이 뜨거워 경쟁도 치열하고 체험 후 홈페이지에 후기도 올라온다고 한다.

16일 SK와 롯데의 문학 경기서 ‘1일 배트걸’로 선정된 행운의 주인공은 가톨릭대학교 음악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혜승(20)씨였다. 경기에 앞서 이날 하루 3시간 동안 ‘경기의 일부’가 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야구장? 처음 와봤어요", 배트걸, 야구와 연애를 시작하다
문학구장 보조요원 대기실에서 처음 만난 김혜승씨는 밝은 미소로 인터뷰에 응했다. 어떻게 배트걸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학 교수님이 'SK 와이번스가 1일 배트걸을 모집 한다더라‘라며 지원해 볼 것을 권하셨어요. 사실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데 일단 재미있어 보여서 지원하게 되었죠"고 답한다. 이어 "야구장에는 아예 처음 와 본거에요. 이제까지는 그냥 TV로만 몇 번 봤을 뿐이에요. 근데 와보니깐 정말 크네요"라며 신기해하는 눈치다.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제 야구에 갓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팬이다. "SK 선수는 누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아는 야구선수는 롯데의 이대호 정도? 솔직히 본지 얼마 안돼서요. 그래도 저희 가족들은 모두 SK 팬이에요. 제가 오늘 SK 경기에 배트걸로 나선다니 가족들이 놀라더라구요".
"근데 제 주위에는 야구팬 친구들이 많아요. 오늘도 SK와 롯데가 경기를 한다니깐 멀리 춘천과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경기 보러 여기(문학 구장)까지 온다고 하더라구요. 친구들이 저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해요"
김혜승 씨에게 구장에 들어서면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는데 긴장되지 않는지 물었다. "제가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거든요. 예전에 케이블 음악 프로그램에 길거리 캐스팅으로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제가 나오는 게 참 신기 하더라구요. 지금은 오보에를 전공하며 방송국 연주회에 갈 때가 있는데 가끔 출연 제의를 받기도 해요. 전 그런 게 좋더라구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 김 씨가 각오를 밝혔다. "솔직히 공 날아오는 게 무섭고 긴장되긴 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뛰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저 달리기도 잘하거든요".

▲ "선수와 사진 찍은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다시 김혜승씨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고 야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야구장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어요. 사람들 응원소리에 그라운드 뒤에 앉아있는 저도 막 흥이 나더라구요". 김 씨는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야구에 대해 잘 모르니깐 언제 공이 필요한지 감을 잡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주심의 수신호를 집중해서 보고 있어야 했는데 그게 긴장되고 어려웠어요. 그래도 실수 안하고 잘 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김 씨에게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에 대해 물었다. "저 경기 시작 전에 선수랑 사진 찍었거든요. SK 선수였는데… 얼굴이 귀여웠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 아, 박 씨였어요! (확인 결과 SK 외야수 박재상 선수였다) 어쨌든 처음 야구장에 와서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는 팬이 되어서 야구장에 자주 찾아 와야겠어요".
cleanupp@osen.co.kr
<사진>SK 와이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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