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판 뜨겁게 강타하는 '한화 열풍' 왜?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6.21 07: 00

"요즘 한화 야구가 정말 재미있다".
한화가 주목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연일 드라마를 써가고 있다. 그런데 의아한 건 한화의 성적이다. 한화는 6위다. 5월 이후 대반전을 연출하고 있지만 5월 이후 성적으로 따져도 23승20패로 전체 5위밖에 되지 않는다. 포스트시즌 진출 커트라인이 4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이상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 구단 사상 이처럼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한화를 보면 야구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일 한국시리즈처럼 경기하며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 사람 냄새가 난다

한화를 이끄는 한대화 감독은 대전토박이다. 느릿느릿한 말투나 화통한 성격이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이다. 그러나 선수생활을 대전에서 하지 못한 건 오랜 한이었다. OB가 임시 연고지로 삼았던 1983~1984년 2년간 대전에서 뛴 것이 전부. 이후 해태에서 한 감독은 '빙그레 저격수'로 활약했다. 그가 대전구장을 찾았을 때 관중석 한켠에는 '배신자'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한 감독은 "내가 뭘 배신했다고 그랬는지…"라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지난 2009년 10월 한 감독이 한화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한 감독은 "이제 고향으로 왔다"며 반색했다. 선수와 코치로 광주와 서울 그리고 대구까지 돌고 돌아, 25년 만에 어렵게 돌아온 그곳 '고향' 대전이었다.
선수들도 그런 감독을 닮았다. 한화의 선발 라인업을 보면 토종 한화 선수는 얼마 없다. 과거 한화와 다른 점이다. 1번타자 강동우는 삼성을 떠나 두산과 KIA를 떠돌다 한화에 왔다. 장성호는 정든 KIA를 떠나 한화에서 새출발했지만 그다지 환호받지 못했다. 정원석도 두산에서 백업멤버로 전전하다 방출당했고, 이대수도 가진 기량에 비해 출장기회가 없는 선수였다. 카림 가르시아도 약점이 뚜렷하고 한계가 보인다는 이유로 롯데와 재계약에 실패하며 한국을 떠나야 했다. 그런 그들이 한화라는 팀에 새둥지를 틀고 하나로 뭉쳤다. 그들은 저마다 가슴에 상처 하나 쯤은 갖고 있었다. 설움과 오기를 터뜨릴 곳이 필요했고 그곳이 바로 한화였다. 한 감독도 현역 시절 OB-해태-LG-쌍방울 등 여러팀을 오갔고 그 마음을 잘 안다.
어느덧 그들은 오렌지 유니폼이 너무 익숙한 독수리들이 됐다.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해야 하는 팀에서 중견선수들을 끌어모으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한 감독은 "리빌딩도 결국 팀 성적이 좋아야 가능한 것이다. 기둥이 될 중심선수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말대로 지금 그들은 한화 리빌딩을 이끄는 기둥들이 됐다. 젊은 선수들도 "선배님들이 열심히 이끌어주시기 계시기 때문에 후배들도 잘 따라간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모두 잘 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인생사가 그렇듯 고비도 있었다. 그리고 보란듯 다시 극복하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 한화 야구에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유다.
 
▲ 포기하지 않는 집념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올해 한화 야구를 보면 베라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할 수 있다. 올해 한화는 역전승이 16승으로 삼성(20승) 다음으로 많다. 5회까지 뒤지던 경기를 뒤집은 것으로만 한정하면 한화가 9승으로 삼성(7승)보다 많다. 한화의 시즌 승수가 삼성보다 7승이나 모자라다는 걸 감안하면 한화의 역전승 체감은 더 크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야구로 팬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끝내기 승리도 리그 가장 많은 5차례다. 이겨도 짜릿하게 이긴다. 한화를 상대하는 팀들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잊혀진 구호를 되새겨야 할 판이다.
역전승이 많다는 건 그만큼 팀에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한대화 감독은 "선발들이 버텨주고 있기 때문에 역전승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현진-김혁민-양훈-안승민-장민제로 구성된 만 25세 이하 토종 선발투수들이 승부가 되는 경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언제든 뒤집을 힘이 있는 것이다. 4번타자 최진행도 "투수들 때문에 타자들이 힘을 낸다"고 했다. 타자들도 찬스를 놓치지 않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투수들의 노고를 빛보게 하고 있다. 한화는 5월 이후 득점권 팀 타율이 유일한 3할대(0.307) 팀이다. 한대화 감독도 "타자들이 찬스에서 움츠러드는 것이 없어졌다. 달라붙으려는 모습이 보인다"며 흐뭇해 한다. 선수들도 득점권 타율 향상에 대해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그들은 어느덧 득점권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한화의 객관적인 전력은 강하지 않다. 시즌 전부터 넥센과 최하위 후보로 지목된 팀이었다. 실제로 한화는 지금도 팀 평균자책점(4.97)·타율(0.247) 모두 최하위에 그치고 있다. 야구통계학자 빌 제임스가 고안한 '피타고라스 승률'에 따르면 한화의 기대 승률은 3할6푼7리로 리그 최하위여야 한다. 그런데 한화는 그보다 8푼 가량 높은 4할4푼6리의 승률로 리그 전체 6위에 올라있다. 객관적인 전력과 숫자 그 이상의 무언가가 바로 한화 야구에 있다. 이기는 경기에서는 꼭 필요할 때 점수를 내고 막는 것이다. 주장 신경현은 "선수들이 이제는 이기는 습관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여상도 "요즘에는 팀이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다"고 자신했다.
 
▲ 신드롬…팬들의 발걸음
한화의 호성적은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전력이 약한 팀을 기대이상 호성적으로 이끌고 있는 한대화 감독에게는 야구의 왕이라는 의미의 '야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한 감독은 "쑥스럽다"며 연신 손사래치지만 이미 팬들은 한 감독의 용병술을 복기하는 맛에 한화 야구를 보고 있다. 한 감독 특유의 푸근하고 정감있는 모습도 팬들에게는 크게 어필되고 있다. 한 감독을 패러디한 합성물은 물론 한 감독과 한화 야구를 소재로 한 '야왕지'라는 인터넷 야구연재소설이 초절정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 감독이 팀 분위기 반전을 위해 내뱉은 '예끼'라는 말은 이제 응원 구호로 나올 정도로 드넓게 확장됐다. '야왕 신드롬'이다. 한 감독은 "그럴 수록 야구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책임감을 보였다.
요즘에는 야왕 신드롬에 이어 가르시아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다. 시즌 중 대체 외국인선수로 들어온 가르시아가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뿜어내자 또 하나의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가르시아는 한국 복귀 후 9경기에서 37타수 8안타로 타율은 2할1푼6리밖에 되지 않지만 3홈런 15타점으로 확실한 거포 본능과 해결 능력을 뽐냈다. 2경기 연속 그랜드슬램과 끝내기 스리런 홈런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홈런뿐만 아니라 10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땅볼을 치고 1루 베이스를 향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들어갈 정도로 작은 것에서부터 열정적인 가르시아의 모습에 팬들은 매료됐다. 한화 상승세에 기름을 얹은 가르시아 신드롬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연스럽게 한화 야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한화는 올해 경기당 평균 6560명의 관중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해(5930명)보다 11.3%가 증가한 수치. 특히 가르시아가 합류한 지난주 6경기에서는 평균 8941명의 관중들이 들어찼다. 구단 최초로 평일 4경기 연속 포함 6경기 연속 8000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했다. 한화 야구의 인기가 절정에 달해있다는 증거. 홍창화 응원단장이 이끄는 응원단도 중독성있는 응원가와 8회 육성응원 같은 특유의 응원문화를 정착시켜 팬들의 흥을 돋우고 있다. 보고 즐기고 소리 지르며 야구장 응원을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켰다. 지난 2년 연속 최하위 추락으로 숨어있던 팬들도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다. 노재덕 단장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근성과 재미"라고 강조했다. 요즘 한화가 일으키는 열풍을 보면 프로야구가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위팀도 아이콘이 될 수 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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