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49번' 모상기, "난 방망이 없으면 죽는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6.22 08: 45

"아, 이러다 2군 가는 것 아닌가".
머릿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짧게 스쳐갔다. 삼성 6년차 거포 내야수 모상기(24)에게 지난 21일 대구 한화전은 숨가쁜 하루였다. 이날 경기 전 모상기는 7본 지명타자로 선발출장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첫 3타석 모두 땅볼로 물러났다. 마지막 타석은 8회말 2사 후 진갑용의 좌전 안타로 찾아왔다. 그렇게 힘겹게 찾아온 기회. 모상기는 한화 필승카드 박정진으로부터 우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쐐기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타구가 담장을 넘어간 순간 모상기는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간의 울분과 불안을 털어버리는 한 방이었다.
▲ 어렵게 잡은 기회

이날 경기 전 삼성 류중일 감독은 "오늘 모상기를 지명타자로 기용한다"고 밝혔다. 이날 한화 선발투수는 우완 양훈. 하지만 류 감독은 "지명타자로도 한 번 기용해 봐야지"라며 그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지난 14일 외국인 타자 라이언 가코를 대신해 1군에 올라온 모상기는 2군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는 선수였다. 50경기에서 타율 3할2푼8리 15홈런 55타점. 홈런·타점에서 독보적인 선두였다. 지난 17일 광주 KIA전에서 1루수로 선발출장한 모상기는 트레비스 블랙클리를 상대로 우월 솔로포를 쳤다. 데뷔 첫 안타가 홈런포였다.
모상기는 첫 홈런을 떠올리며 "기분이 진짜 좋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1군 등록 후 일주일 동안 6경기에서 9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2삼진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는 "TV로 타격 장면을 보니 대책없이 하더라. 세게만 치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정확하게 맞히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1~2군의 수준차도 분명했다. 그는 "1군 투수들은 볼끝이나 변화구 각도가 다르다. 위협적인 공을 던진다"며 "경기장 분위기는 이미 적응했지만 1군은 제 멋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조금 더 힘을 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한 타석, 한 타석에 모든 걸 건다는 생각이다. 기회가 길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다음은 절대 없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는 것이 모상기의 말이었다. 그의 노력은 2009년까지 삼성 수석코치로 있었던 한화 한대화 감독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한 감독은 이날 경기 전 7번 지명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올라가 있는 모상기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모상기 많이 컸네"라며 "그래도 저 녀석이 진짜 열심히 하기는 열심히 한다"고 한마디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어렵게 살린 기회
데뷔 첫 지명타자 선발출장. 힘이 잔뜩 들어갈 만했다. 2회 첫 타석에서 초구를 건드려 1루 땅볼로 아웃됐다. 4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2루 땅볼로 물러났다. 6회 3번째 타석에서도 잡아당긴 것이 3루 땅볼로 이어졌다. 3타수 무안타. 지명타자로 나왔으나 외야 큰 타구도 날리지 못했다. 갖다 맞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가고 있었다. 모상기는 "이러다 2군 가는 것 아닌가"라고 혼잣말했다. 그러나 하늘은 모상기를 버리지 않았다. 3-2로 리드하던 8회말 2사 후 진갑용이 좌전 안타를 때리면서 모상기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한화 마운드에는 필승 좌완 박정진이 있었다. 초구 볼을 고른 모상기는 2구째 직구에 크게 헛스윙했다. 3구째 직구에도 파울을 만들었다. 볼카운트는 2-1으로 몰렸지만 모상기의 스윙은 거침없었다. 이윽고 들어온 4구째 143km 바깥쪽 직구를 모상기는 힘껏 밀어쳤다. 타구는 우중간 담장을 그대로 넘어갔다. 지난 17일 데뷔 첫 홈런을 좌완 트레비스를 상대로 밀어쳐서 우측 담장을 넘겼던 모상기는 이번에도 좌완 박정진의 공을 밀어넘겼다. 모상기는 "커트를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어차피 2사였고 쳐서 죽든 그냥 죽든 똑같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고 말했다.
홈런을 친 후 베이스를 돌던 모상기는 억눌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가슴에 맺힌 게 있었다. 광주 마지막 경기부터 이날까지 6타수 무안타였다. 그게 너무 응어리로 맺혀 있었다"며 "속이 탔다. 다시 2군으로 가는 건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했다"고 털어놓았다. 벼랑 끝으로 몰리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내 이미지대로 한 번 휘둘러 보자는 마음이었다. 자신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과는 팀 승리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 투런포. 비로소 진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 삼성의 49번
삼성의 49번은 의미있는 숫자다. 지난 2002년 끝내기 홈런으로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었던 마해영이 달고 있던 등번호가 바로 49번이었다. 지난 2008년까지 69번을 달고 뛰었던 모상기는 올해 제대와 함께 49번을 넘겨받았다. 그는 "50번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해영 선배님이 쓰시던 49번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았다"고 웃어보였다. 마해영처럼 모상기도 우타 거포로서 잠재력을 갖췄다. 이날 홈런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7경기에서 2홈런 그것도 모두 오른쪽 담장으로 밀어 넘겼다. 가코보다 훨씬 빠른 페이스로 담장을 넘기고 있다. 거포를 찾으러 굳이 먼 미국까지 갈 필요없었다. 경산에서 찾으면 될 일이었다.
모상기도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있다. 그는 "내게 항상 기회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덩치가 있는데 그동안 너무 갖다 맞히려 했다. 대수비나 대주자하러 1군에 온 게 아니다. 어차피 타격으로 승부해야 한다. 지금 난 방망이가 없으면 죽는다"며 전의를 드러냈다. 류중일 감독도 "모상기의 홈런이 결정적이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모상기는 "감독님이 기회를 주시는 만큼 꼭 보답하고 싶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느낌이 왔다"고 자신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살린 모상기의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삼성의 49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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