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중이야 검토".
지난 21일 대구 삼성전. 한화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2-3으로 뒤진 8회말 필승카드 박정진을 마운드에 투입시켰다. 9회 1점차는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1점차 뒤진 상황에서 박정진을 쓰기는 아까운 면이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정진이 모상기에게 쐐기 투런 홈런을 맞으면서 악수가 되고 말았다. 만약 외국인 투수 오넬리 페레즈(28)가 믿음직스러웠다면 어떠했을까.
오넬리는 7회 2사 후 박석민을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박석민을 헛스윙 삼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운드로 날아오는 배트를 힘겹게 피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잽싸게 몸을 틀어 마운드를 내려가며 혀를 내밀던 오넬리의 모습은 익살스러웠다. 그러나 8회에 오넬리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최형우-조영훈이라는 좌타자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7회 박석민 이전에는 박한이-정형식으로 모두 좌타 라인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우타자 원포인트 릴리프로 기용된 셈이다.

한화 코칭스태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넬리는 우타자를 73타수 15안타 피안타율 2할5리로 잘 막았다. 그러나 좌타자를 상대로는 32타수 11안타로 피안타율이 3할4푼4리나 된다. 팔 각도가 사이드암에 가깝기 때문에 좌타자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시즌 전부터 코칭스태프에서 우려한 부분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우타자를 상대로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피홈런 4개 중 3개를 우타자에게 맞은 것이다.
오넬리는 보직도 불분명하다. 한대화 감독은 "박정진 신주영이랑 상황에 따라 기용하는데 어떤 상황에서 기용해야할지 애매하다"고 했다. 오넬리는 셋 중에서 가장 믿음이 떨어진다. 패전 처리로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12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무려 16점차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2이닝을 던졌다. 정민철 투수코치는 "오넬리에게 상황에 따라 마무리로 번갈아가며 기용되는 시스템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사실 외국인 투수가 그런 상황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오넬리가 착하기는 참 착하다"고 했다.
오넬리는 올해 26경기에서 4승1패6세이브1홀드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만 놓고보면 흡사 1990년대 전천후 투수 구대성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5점대(5.40) 평균자책점과 5개의 블론세이브에서 나타나듯 살얼음 피칭을 거듭 중이다. 블론세이브를 하고도 승리를 챙긴 게 2승이나 된다. 그래도 성격은 활달하다. 최진행은 "오넬리는 세이브를 하는 날 라커룸에서 노래를 틀고 춤을 추고 난리다. 정말 웃기다. 성격이 좋고 재미있어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며 '오넬리 효과'를 설명했다. 오넬리는 국내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낸다.
15점차 대패를 당한 사직 롯데전에서도 오넬리는 타자로 나와 느닷없이 큼지막한 외야 뜬공을 친 것처럼 뜻하지 않은 개그로 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21일 대구 삼성전에서도 박석민의 마운드로 날아오는 배트를 피하는 위험한 장면에서도 특유의 익살스런 모습으로 재미를 줬다. 그러나 야구는 개그가 아니다. 한대화 감독은 오넬리 교체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포괄적인 말로 대신했다. 한 감독은 보직없이 떠돌고 있는 오넬리에 대해 "4번타자"라는 농담도 던졌다. 그러나 지금 한화에게 가장 필요한 건 확실한 마무리투수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면 서둘러야 한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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