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잠실구장에는 굵은 빗줄기의 장맛비가 내리면서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시즌 10차전이 우천으로 연기됐다. 비가 와서 경기가 순연되면 선수들의 마음은 어떨까.
선수들은 기본적인 체력 훈련과 기술 훈련을 실내구장으로 이동해 실시, 컨디션을 조절한다. 그러면서 홈팀과 원정팀 선수들은 라커룸과 체력 단련실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서로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날은 올 시즌 한국야구 초년병인 벤자민 주키치(29, LG)와 코리 알드리지(32, 넥센)가 통로에서 만나 20분 넘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주제는 '지난 3개월 동안 느낀 한국야구'였다.
먼저 좌완 투수인 주키치는 올 시즌 14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3패 평균자책점 3.39로 LG 선발의 한 축을 맡고 있다. 그의 경우 짧은 시간이지만 특유의 제구력와 완급 조절 능력으로 한국야구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케이스다.
반면 알드리지는 넥센이 4번타자를 맡기기 위해 고심 끝에 영입한 좌타자로 올 시즌 64경기에 출장해 2할4푼6리의 타율에 57안타 9홈런 38타점을 기록 중이다. 시즌 초 극도의 부진 속에서 홈런포까지 띄엄띄엄 나와 퇴출설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근 5경기 동안 타율 4할(20타수 8안타)에 2홈런 8타점 4득점을 올리며 서서히 한국야구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단계다.
주키치와 알드리지의 가장 자주 올린 대화 내용은 볼카운트 승부였다. 주키치는 투수 관점에서 한국 투수와 타자들의 볼카운트 승부를, 알드리지는 타자가 느끼는 한국 투수들의 승부에 대해서 장시간 동안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이들은 "한국 투수들이 초구에 변화구를 던진다"는 사실에 크게 동감했다.
둘 사이에서 조금은 더 성적이 좋은 주키치는 "나는 경기 초반에 보통 직구를 많이 던진다. 초구에 몸쪽 직구 승부를 즐긴다"고 말한 뒤 "그러나 한국 투수들의 경우 초구에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더라"라며 미국과 한국의 다른 야구 문화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알드리지는 "맞다. 시범경기 때 첫 타석에서 초구에 상대 투수가 슬라이더를 던지더라. '와우, 슬라이더를 던지네'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다음 타석에서도 나에게 초구 슬라이더를 던지더라. 어떤 투수는 초구에 체인지업도 던졌다"면서 "미국에서는 보통 초구 직구를 많이 던지는데 확실히 한국야구는 다르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알드리지의 말을 흥미롭다는 듯이 경청한 주키치도 "나도 의외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초구에 변화구를 던지다 보면 볼카운트가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몰리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모든 한국 투수들이 다 초구에 변화구를 던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주키치와 알드리지는 삼성 불펜투수 정현욱(33)을 가리켜 "삼성에 키도 크고, 체격도 큰 우완 불펜 투수 누군지 아냐"고 말한 뒤, "이 친구는 우리 스타일이다. 직구를 정말 많이 던진다"며 서로의 의견에 공감했다.
알드리지는 "전에 타석에서 만났는데 초구에 높은 직구를 던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공이 빨리 들어와 깜짝 놀랐다. '와우, 빠르네'라고 생각했고, 2구째 또 다시 직구를 던졌다. 나에게 직구만 5개나 던졌다"며 "너무 빨랐다. 93마일(150km), 95마일(153km)은 나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7일 SK전에서 9회 4타자 연속 볼넷을 내준 임찬규 이야기를 꺼낸 주키치는 "임찬규는 좋은 직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변화구를 던지다 볼카운트가 불리해졌다"면서 "직구를 자신있게 던졌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알드리지 역시 "맞다. 그런 상황에서 직구 승부가 더 필요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대화의 마지막은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사인요청 및 사진 촬영 때 느낀 에피소드로 마감했다.
알드리지는 "하루는 사진을 찍는데 어떤 남자가 내 어깨에 기댔다.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떤 남자 팬은 내 가슴에 안겼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행동이었다"며 "그냥 어깨 동무 정도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키치도 껄껄 웃으며 "맞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어떤 남자팬은 내 손도 잡았다. 한 팬은 내 손을 너무 꽉 잡고 날 끌고 가려고 해서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냥 사인 해달라고 하면 다 해드린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마침 대화가 끝나가는 순간 김시진(53) 넥센 감독이 이들 사이를 지나가며 쩍 벌어진 알드리지의 왼 어깨를 '착' 소리가 나게 때리자, 알드리지는 "왜"라고 외마디 비명을 외쳤다. 이 말을 들은 김 감독은 "뭐, 왜"라고 하자, 알드리지는 "안녕하세요"라며 환하게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주키치와 알드리지는 한국야구 뿐 아니라 문화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알드리지는 얼마 전 목동구장에서 소독차를 보고 깜짝 놀라 도망가 동료들에게 즐거운 모습을 선사했다. 주키치는 매운 깐풍기를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 동료들을 웃게 했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우천 덕분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난 3개월 동안 한국야구 적응기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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