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뿌린 고뇌…나를 찾다
OSEN 이은화 기자
발행 2011.06.23 00: 28

스님의 전국 24개 산사 순례기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바꿔줬다”
나를 치유하는 산사기행 

승한|288쪽|불광출판사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요긴한 일이 아니면 열 수 없는 문. 면담 가능한 시간 12∼2시.’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산 1번지. 문수산 축서사 북암 앞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사립문에 붙은 글귀가 찾은 이의 발길을 민망하게 한다.
축서사 그 외딴 오두막집에는 기후스님이 홀로 살고 있다. 그곳을 찾아 나선 길에 처음 눈에 띈 건 소나무 오솔길에 붙어 있는 ‘토굴 가는 길’이란 팻말이다. 엄연히 암자를 뜻하는 북암이란 이름이 있건만 말 그대로 토굴이 어울리는 형체다. 그 안에서 그는 치열한 구도정신으로 외부와 자신을 다스리고 있었다.
6년간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묵언정진을 했다는 기후스님에게서 들은 말은 “그동안 허상에 끌려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았구나”에 대한 회고였다. 말은 바르게 하기도 어렵지만 바르게 이해하기도 어렵기에 가급적 말을 적게 하기 위해 ‘무구자’란 호도 지었다고 했다.
산사에 머물며 템플스테이를 지도하고 있는 승한스님이 절집 기행에 나섰다. 부안 내변산 월명암, 여수 돌산도 향일암, 해남 달마산 도솔암, 경주 남산 칠불암, 순천 조계사 송광사, 제주 한라산 관룡사 등 전국 24개 산사를 돌아봤다. 그 끝에 그는 절집을 돌아보는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고 토로한다. “몸과 마음을 바꿔 놓고 목적과 가치를 바꿔 놓았고 살아가야 할 이유와 방법도 바꿔 놓았다”고 했다. 
단순한 기행서로 볼 것은 아니다. 사찰 안내서는 더더욱 아니다. 책은 길 위에 뿌린 고뇌 속에서 근원적 고통을 치유한 이야기와 깨달음을 갈무리하는 데 비중을 뒀다. 젊은 날 한때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해야 했던 그가 다시 배웠다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설파했다. 
함평 모악산 용천사를 찾는 길에선 ‘길 위의 독’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길 위의 독 ‘여독’이다.” 길을 가다가 멈춰서야 하는 것은 멈추지 않고서는 그 독을 가늠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산청 지리산 법계사에 이르는 여정에선 지리산 능선의 장중함 속에 펼쳐진 느림의 철학을 발견한다. 산은 언제나 사람의 영혼을 담금질한다는 사실도 새삼 일깨웠다고 했다. 또 제주도 서귀포 마라도 기원정사에선 ‘내 삶의 이어도’를 짚어보고, 영덕 운서산 장육사에선 한낱 돌덩이 위해 새겨진 ‘버림’과 ‘비움’의 문양을 읽어낸다.
‘홀로 사는 즐거움만큼 큰 즐거움도 없다.’ 법정스님의 수행담이 입가에 맴돌 만한 기행은 2년여 동안 이어졌다.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버리고 간 외딴 오두막집에서 법정스님은 이렇게 적었다. “혼자 있음으로 해서 함께 있을 수 있다.” 너무 얽혀 함께 지내다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고마움도 잃게 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길로 나서보지 않고서는 진정하게 나를 통찰하기도 힘들다는 의미로 쓰였다. “여간해선 길 위의 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euanoh@ieve.kr/osenlif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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