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악과의 인연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스물한 살 전도유망한 클래식 작곡가였던 이지수 음악감독은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의 피아노 연주 대역으로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감독은 ‘어쩌다 보니’ 영화 음악을 업으로 삼게 된 케이스다. 원래 꿈은 순수 클래식에 있었고 이 때문에 서울대 작곡과에 수석 입학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했어요. ‘재미있겠구나’ 정도였지 직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죠. 신기한 게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더라고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직업이 돼 있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옛날 클래식 작곡가들도 순수 클래식을 하면서 부업으로 영화 음악을 했더라고요. 레나드 번스타인이나 쇼스타 코비치 같은 사람들은 클래식 작곡가지만 영화 음악을 엄청나게 많이 썼어요. 제 모델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종 드라마 및 영화 OST 작업을 하게 된 그는 수많은 히트곡을 내놨다. ‘올드보이’, ‘빙우’, ‘친절한 금자씨’,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혈의 누’ 등의 영화 음악과 ‘겨울연가’, ‘봄의 왈츠’와 같은 드라마 OST 등을 통해 명성을 쌓았다.
특히 ‘올드보이’의 ‘우진 테마(Cries of Whisper)’는 이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곡. 이 곡으로 그는 ‘대종상 영화제’와 '대한민국 영화대상', '영평상 등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올드보이’ 음악 감독이었던 조영욱 씨가 제 곡들을 듣고는 같이 작업해보자고 연락이 왔었어요. 작곡가가 모두 3명이었는데 제가 우진 테마를 맡았죠. 박찬욱 감독님의 경우 음악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이세요.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으시죠. 음악이 들어가야 할 부분을 비워두시고 작업하셔서 마음껏 곡을 펼칠 수 있었어요.”
주로 실사 영화 속 멜로디를 책임졌던 이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음악 감독으로 선임돼 곡 작업을 마쳤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을 탈출해 세상 밖으로 나온 암탉 잎싹과 청둥오리 초록이의 모험담을 그린 작품. 순 제작비만 30억이 들었다. 배우 문소리와 유승호가 각각 잎싹과 초록이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 같은 애니메이션 OST는 그에게도 처음 해보는 도전이다.
“기존에 해왔던 음악 작업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실사 영화는 사운드와 화면이 존재해서 이에 맞게 곡을 채우면 되는데 애니메이션은 사운드, 화면 모두 창조하는 거고 빈 공간의 허전함을 음악으로 채워줘야 해서요. 음악의 양도 더 많아야 하고 비중도 더 커지더라고요. 음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애니메이션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이번 애니메이션 주제곡 ‘바람의 멜로디’는 가수 아이유가 불러 화제를 모았다. 영화 음악의 주제곡을 부른 게 처음인 만큼 어려워하진 않았을까.
“누구에게 맡길까 고민하던 중에 주위 사람들이 아이유를 추천하셔서 결정하게 됐어요. 애니메이션과 목소리 톤이 맞을 거 같더라고요. 몇 번 불러 보더니 잘 소화해서 순발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음악을 비롯해 CF, 게임, 국악 음반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만들어 온 그는 이 분야의 일을 계속 하게 된 이유로 영상과 합쳐졌을 때 시너지를 내는 묘한 매력을 들었다.
“제가 하는 음악들은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영화는 영상에 최대한 맞춰져야 하고 뮤지컬은 주로 음악이 끌고 가는 게 많고요. 또 게임에 쓰이는 음악은 분위기를 잘 살려야 하죠.”
“재미있는 사실은 어떤 영상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곡이 주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현대자동차 기업 광고 배경 음악으로 쓰였던 곡이 드라마 ‘봄의 왈츠’에 나왔던 곡과 같은데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이 감독은 지난해 결혼했다. 아직 2세 소식은 없지만 아이가 태어나 음악을 한다면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생각이다.
“제 아이가 음악에 관심 있어 한다면 정말 잘 가르쳐 줄 자신 있어요. 일도 좀 도우라고 하고.(웃음) 결혼하고 나서 부인이 제대로 작업하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일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며 걱정해 주더라고요. 음악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 요즘엔 같이 음악도 들어주고 비평도 해줍니다.”
작곡의 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에 있다. 그는 한국 민요와 할리우드 스타일 음악을 접목시킨 ‘아리랑 랩소디’처럼 다음 앨범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계획이다.
“한국인들이 잘 아는 멜로디나 쉬운 동요를 가지고 영화 음악 같은 느낌의 곡으로 편곡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재밌지 않나요?”
rosecut@osen.co.kr
<사진> 산타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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