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투수 출신 김시진(53,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투수 조련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김 감독은 과거 현대 시절 투수코치로 활약하며 김수경을 비롯해 수 많은 젊은 투수들을 길러냈다. 넥센의 마운드도 화수분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년 좋은 투수들이 출현한다.
이쯤 되면 김시진 감독은 야구에서 투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김 감독의 야구론에서 "야구에서 타격, 투수력, 수비력, 그 중에서 제일은 수비력이다"라고 피력했다.
김 감독은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LG 트윈스전이 우천으로 연기되자 3루측 덕아웃에서 기자들과 만나 "투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비다. 그리고 수비의 첫 단계가 투수력이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이 말한 것은 지난 4월 중순 미국스포츠전문매체인 'ESPN'에서 발행하는 유료 잡지에서 '벅 쇼월터 매직'이라는 기사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이 기사를 살펴보면 쇼월터는 지난 시즌 중반 메이저리그 최약체로 꼽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속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정확히 8월 4일(이하 한국시간)이었다. 당시 볼티모어의 성적은 32승73패였다. 지구 선두 경쟁을 하던 뉴욕 양키스, 탬파베이 레이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쳐진 꼴찌였다.
그러나 쇼월터 감독 부임 후 볼티모어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쇼월터는 지난해 부임 후 34승23패를 기록하며 미네소타 트윈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이어 메이저리그 30개팀 가운데 전체 3위에 올랐다.
비결은 수비와 마운드 보강에 있었다. 쇼월터 감독이 부임 전과 부임 후부터 시즌 초 4연승까지를 기준으로 놓고 볼 경우 부임 전 득점은 3.61점이었다. 부임 후 득점은4.10이었다. 득점력은 0.5점가량 늘었다. 반면 실점률은 5.46에서 3.60으로 2점 가량이 떨어졌다. 덕분에 볼티모어는 승리를 거두는데 많은 점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쇼월터 감독은 또 좌익수에 노란 레이놀드와 코리 페터슨을 대신해 펠릭스 파이를 주전으로 기용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공격력은 파이가 레이놀드와 페터슨에 비해 떨어지지만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아담 존스와 닉 마카키스에 비해 수비를 잘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실점 비율이 낮아졌다는 점을 수비만 잘했다고 볼 수 없다. 선발 뿐 아니라 불펜에서도 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쇼월터 감독 부임 전후를 놓고 볼 때 탈삼진 수치가 6.1개에서 6.7개로, 볼넷 숫자도 3.6개에서 2.8개로 한 개 가량 줄었다. 피홈런 수치도 1.2개에서 1.0개가 됐다. 경기 당 호수비 수치도 2.1개에서 3.1개가 되면서 메이저리그 전체 3위가 됐다. 더불어 경기 중 실책과 기록되지 않은 실책 수치는 2.3개에서 2.1개로 줄었다.
볼티모어는 개막 후 4연승을 달리며 돌풍의 팀이 되는 듯 싶었으나 이후 주춤하면서 25일 현재 33승39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최하위다. 그러나 죽음의 조로 불리는 동부지구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올 시즌 넥센도 64경기에서 23승41패로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실점은 314점에 그치며 전체 6위다. 평균자책점도 4.50으로 6위다. 반면 득점은251점에 그쳤다. 경기당 4.9점을 실점하고, 득점은 3.9점에 그쳤다. 실점이 1점이 더 많다. 실책도 49개로 롯데(58개) 다음으로 많다. 수비력과 투수력 모두에서 김 감독이 생각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1위 SK는 올 시즌 63경기에서 230실점으로 8개구단 가운데 최저다. 득점은 282점이다. SK는 경기당 4.5점을 내지만 실점은 3.7점에 그쳤다. 득점이 0.8점이 더 많다. 수비 실책도 33개로 KIA 다음으로 적다. 현재 1위를 달리는 것도, 그리고 지난 4년동안 세 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것도 높은 마운드와 강한 수비력 때문이다.
실제로 김 감독의 말처럼 8개 구단은 스프링캠프 때 수비 훈련에 집중한다. 넥센도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에서 많은 시간을 수비 훈련에 쏟았다. 그러나 선수들은 막상 경기를 하면서 약속된 플레이를 잊어버리기고 하고, 실책을 저지른다. 물론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책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훈련을 통해 계획된 플레이도 가끔은 망각하면서 상대에게 실점 기회를 제공한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여기에서 나온다.
김 감독은 수비 중에서도 "추가 베이스를 주지 않아야 하며, 후속 주자보다 선행주자를 잡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뿐 아니라 최희섭(32, KIA)도 수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SK와 맞대결을 펼칠 때 느낌을 밝혔다. 최희섭은 "다른 팀보다 SK가 수비가 정말 강하다. SK와 경기 때 한 이닝에 안타 3개를 쳐도 득점을 하기 힘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선두타자 이용규가 좌전안타를 치고 나가도 후속타자 김선빈의 우전안타 때 3루로 뛰다 아웃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2루에서 머물렀다가도 이범호의 안타 때 홈을 들어오다 외야수의 송구로 홈에서 아웃 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김 감독은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나오는 점수 중에서 ⅓은 수비만 잘 하면 실점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수비는 실책 뿐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실책, 그리고 호수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무엇보다 야구에서 투수가 최우선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던 김시진 감독이 수비에 대해서 강하게 역설한 것만으로도 현대 야구의 흐름은 타격도, 투수력도 아닌 수비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게 됐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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