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대호 인턴기자] 잘 던지는 선수는 선발, 못 던지는 선수는 구원이 상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초창기 선발 투수들은 가급적이면 길게 이닝을 가져갔고, 과도한 어깨의 사용은 결국 혹사로 이어져 선수생활을 단축시키는 일이 잦았다. 팀당 80경기만 하던 1982년 36경기에 나서 224⅔이닝을 던지며 24승을 따낸 OB 박철순(55)이 그랬고, 1983년 혼자 427⅓이닝을 던지며 팀의 52승 가운데 30승을 거둔 삼미 장명부(2005년 작고)도 그랬다.
이런 시대에 1985년 삼성 좌완 권영호(57, 현 영남대 감독)가 '마무리'라는 보직으로 처음 자리매김 한 것은 한국 프로야구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해 삼성의 유례없는 전후기 통합우승은 든든하게 뒤를 지켜준 권영호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권영호는 빠른 공은 아니었지만 면도날 같은 제구력과 당시엔 낯설었던 체인지업으로 타자들을 요리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100세이브'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권영호는 1989년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그리고 16년 뒤, 삼성에 오승환이 등장했다. 2005년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국내 최고의 마무리로 군림하다 지난 2년간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던 오승환. 하지만 올 시즌 오승환은 25일 현재까지 27경기에 나서 1승 21세이브(1블론세이브) 평균자책점 0.89으로 완벽하게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소방수' 권영호의 눈에 팀 후배이자 마무리 후배인 삼성의 '돌부처' 오승환(29)은 어떻게 비칠까. 권 감독은 지난 2004년 세계 대학야구선수권대회 출전 당시 코치와 선수로 함께했던 오승환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때부터 오승환은 누구도 못 말릴 연습벌레였습니다. 오승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누가 안 시켜도 하는데 오승환이 딱 그랬죠. 전 그때부터 오승환이 (프로에 진출해서)무조건 성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좋은 볼을 가진 건 유명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마무리 투수 대선배인 권 감독이 보는 오승환의 마무리로서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 권 감독은 오승환의 마운드에서의 부동심을 첫 째로 꼽았다. "마무리 피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성격이 중요합니다. 오승환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볼에 자신이 있으니 그냥 직구만 던져도 타자들이 어려움을 느끼죠. 말 그대로 마무리로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성격입니다. 별명도 '돌부처'잖아요".(웃음)
오승환은 2년간 부상으로 신음하다 올 시즌 예전보다 더욱 강력한 공으로 완벽히 부활했다. 권 감독은 이에 대해 "지금 공 던지는 거 보니 몸은 완전히 회복된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부상 경력이 있지만 한 게임서 7~8이닝씩 지금 같은 공을 던지곤 했습니다. 올해 공을 보니 예전보다 더 좋아지고 페이스도 좋아 40세이브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라며 오승환의 부활을 반겼다.
권 감독은 이어 "오승환이 지금 대략 200세이브 쯤 했는데(25일 현재 통산 186세이브) 지금 구위를 보니 앞으로 4~5년 이상 충분히 매년 30세이브는 할 것 같습니다. 해외진출만 하지 않는다면 통산 400세이브도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며 오승환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럼 권 감독이 오승환에게 선배로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권 감독은 "지금도 국내 최고의 마무리지만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떨어지는 볼을 추가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본인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겠지만 지금 오승환이 던지는 변화구 가운데 떨어지는 볼은 슬라이더 하나인데 좀 아쉽습니다. 만약 위력적으로 떨어지는 볼이 하나만 더 추가된다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하리라고 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신무기 추가를 주문하기도 했다.
끝으로 권 감독은 "부상 안 당하는 게 1등입니다. 자꾸 얘기하지만 오승환은 부상만 안 당하면 앞으로 매년 30세이브 이상 해 줄 선수입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위해서도 몸 관리 잘 해서 오래 선수생활 했으면 합니다"고 후배에 대한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cleanupp@osen.co.kr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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