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삼성-LG전은 우천으로 일찌감치 연기됐다. 그러나 삼성 선수들은 경기장에 나와 타자들은 실내 연습장에서, 투수들은 비를 맞으며 3루측 불펜에서 불펜 피칭을 했다.
그런데 불펜 피칭을 하고 있던 카도쿠라 켄 근처에서 글러브도 없이 맨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았다가 공을 던지는 동작을 수 차례 반복하는 이가 있었다. 그의 눈빛은 실제 경기 중 마운드에 서 있는 때처럼 진지했다. 그는 잠시 후 계단을 걸어 올라 통로로 이동해서 또 다시 이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철벽 불펜에서 핵심인 '국민노예' 정현욱(33)이었다.

정현욱은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로 꼽힌다. 지난 1996년 프로 데뷔한 그는 꾸준한 노력 끝에 '대한민국 최고의 미들맨'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특히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발탁돼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국민 노예'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187cm에 85kg, 산만한 덩치가 말해주듯 정현욱은 얼핏 보면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 전 특이한 행동에 대해 "어떤 부분을 연습하는 거냐"는 질문에 그는 "LG전 때 상체가 완전히 안 넘어오는 것 같아서요"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28일 LG전에서 잘 던졌잖아요?"라는 취재진의 말에 정현욱은 "아, 결과는 좋았지만 사실 운이 따랐을 뿐이에요"라며 자신에게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정현욱은 28일 LG전에서 팀이 1-3으로 뒤진 7회 2사 후 등판해 1⅓이닝 동안 삼진 한 개를 곁들여 1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의 호투 덕분에 삼성은 경기 중반 LG에 흐름을 내주지 않으며 연장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경기 후 류중일 감독도 "중간 투수들이 잘 던져줬기에 가능한 승리였다"고 칭찬했다.
올 시즌 성적도 나쁘지 않다. 정현욱은 올 시즌 31경기에 등판해 2승3패 10홀드 평균자책점 2.41을 기록 중이다. 정현욱은 '수호신' 오승환(29)이 소속팀 삼성에 있어 단순히 중간계투지만 구위만 놓고 보면 다른 팀에서 당장 마무리 투수를 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는 큰 욕심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펜에서 임무에만 더욱 더 집중하겠다는 마음이다.
이날 정현욱의 작은 행동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단순히 불펜투수라고 생각하지 않은 듯 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집중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볼 때 정현욱은 불펜 투수가 아니라 특급 불펜투수다.
agass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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