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야구장 사람들] 가르시아, ‘스리런의 사나이’ 한대화의 계보 잇다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1.07.02 13: 42

‘멕시칸 독수리’ 카림 가르시아(36)가 한화 이글스에서 한대화(51) 감독의 ‘스리런 사나이’ 계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르시아는 지난 달 30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원정경기에 5번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 1회와 7회 스리런 홈런을 두 방이나 터뜨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SK의 최고투수 글로버와 정우람을 상대로 값진 3점포 두방이었습니다. 가르시아의 한경기 2홈런은 롯데 소속이던 지난해 7월22일 대전 한화전 이후 11개월8일만의 폭발로 올해 홈런 6개 중 3개가 스리런 홈런입니다.
가르시아는 2008년 롯데에서 데뷔 첫 해 터뜨린 홈런 30개 중 10개가 스리런이었고 올해는 지난 달 10일부터 한화에서 뛰면서 17일 대전 두산전에서 연장 10회말 2사후 끝내기 스리런을 쏟아올려 11-8로 짜릿한 승리의 주역이 됐습니다. 한국야구 사상 원조‘스리런의 사나이’로 불리운 한대화 감독의 성가를 같은 팀에서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한대화는 동국대학 4학년 시절 대표팀에 뽑혀 1982년 9월 18일 제27회 서울 세계선수권대회 일본과 우승 결정전에서 8회말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로 2-2 동점 직후 왼쪽 폴에 맞는 3점홈런을 터뜨려 한국이 세계선수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다음 해 OB 베어스에 입단해서 개막전 데뷔 첫 경기서 MBC 청룡의 류종겸을 상대로 3점포를 날려 ‘스리런의 사나이’’3점포의 사나이’’해결사’’클러치 히터’의 별명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간염을 앓아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86년 초 김성근 감독의 눈 밖에 나 해태의 내야수 양승호+투수 황기선과 1대2 트레이드 됐습니다.
당시 한대화는 고향팀 충남에서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하게 되자 해태로 이적을 망설였으나 동국대 사령탑이던 김인식 감독이 설득해 해태로 옮겼습니다. 사양길에 접어든 김봉연의 뒤를 이어 타이거즈의 중심타자가 된 한대화는 간염도 3년만에 치유되자 해결사 몫을 톡톡히 해내 한국야구 최고의 3루수로 떠올랐습니다.
86년 해태 이적 첫해 결승타 부문(90년에 폐지) 1위(16개)에 오르고 94년 타격왕,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8회 수상, 올스타전 11회로 최다 출장의 개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해태에겐 86년부터 4회 연속 챔피언 타이틀 획득 등 한국시리즈 6회 우승, LG로 이적 후에도 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등 7차례에 걸쳐 소속팀을 정상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했습니다.
83년부터 97년까지 15시즌을 뛴 한대화는 개인 통산 타율 2할7푼9리에 1,190개 안타, 163개 홈런, 712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한대화 감독은 1일 “가르시아가 3점 홈런을 많이 때려줘 반갑다. 예전에 내가 들었던 스리런의 사나이 라는 별칭을 듣는다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하고 “내가 선수 시절 스리런을 20여 개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르시아가 더 많은 스리런을 때려주길 기대한다”고 회상합니다(한국야구위원회는 개인별 3점 홈런 개수는 집계를 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 않습니다).3점 홈런을 많이 때린 비결은 “주자가 많이 나가 있으면 내가 해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175cm, 75kg의 그다지 크지 않은 몸매의 한대화는 손목 힘이 좋고 순간적인 임팩트 파워가 대단해 중장거리 타자로 투수들이 가장 꺼리는 상대였는데 한 감독보다 덩치도 더 크고 손목힘도 좋은 가르시아가 얼마나 더 많은 스리런 기록을 세울 지 관심이 갑니다.
OSEN 편집인 chunip@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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