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주자가 있던 시점에서 3루타를 맞고 동점을 내줬다. 그러나 그가 경기에서 내준 안타는 그 뿐이었다. 연장 끝 신승을 거둔 두산 베어스의 초심을 9년차 우완 노경은(27)이 일깨워주었다.
노경은은 지난 2일 잠실 LG전서 3⅓이닝 1피안타(탈삼진 4개, 사사구 4개) 무실점을 기록하며 연장 11회 4-3 경기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8회말 1사 1루서 이혜천의 바통을 이어받아 조인성에게 우중간 3루타를 내주고 선발 김선우의 승리를 날려버리며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결정타를 맞지 않으며 동점 상황을 이어간 끝에 승리 투수가 되었다. 140km대 후반의 직구와 포크볼, 커터 성 슬라이더, 커브를 섞어던지며 호락호락하지 않은 LG 타선을 막아냈다. 경기 후 노경은은 "내가 잘 던졌다기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라며 겸손해했다.
사실 노경은은 지난 몇 년간 팀 내에서도 회의론에 휩싸였던 인물이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힘껏 던져도 140km대 초반에 그치는 등 구위까지 하락하며 방출 위기까지 몰리기도. 2003년 계약금 3억8000만원을 받은 거물 신예였으나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2군에 익숙한 선수가 되는 듯 했다.
지금은 다르다. 필승 계투 정재훈의 어깨 통증 공백으로 노경은은 김광수 감독대행이 믿는 계투 요원 중 한 명이 되었다. 지난 6월 한 달간 1승 2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1.96으로 좋은 모습을 보인 그의 올 시즌 성적은 3승 2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3.79.(3일 현재)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노경은은 올 시즌을 앞두고 롱릴리프 요원으로 기대를 모으기는 했으나 이는 박빙 리드 상황이 아닌 추격조, 나쁘게 말하면 패전처리로서 가능성을 타진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갑작스럽게 팀 사정 상 필승 계투 노릇을 맡게 되었고 리드를 패배로 바꾸는 일 없이 임무를 소화 중이다. 기간이 길지 않지만 어쨌든 예상 밖의 활약이다.
마치 2005년 두산이 당시 승리 계투를 발견하던 시절과 같다. 2004년 9월 터진 병역 파동으로 인해 마무리 구자운, 잠수함 계투 정성훈 등을 훈련소로 떠나보냈던 두산은 신인 마무리 서동환이 개막전부터 한계를 비추며 2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산은 정재훈이라는 새 마무리를 얻었다. 강속구 대신 제구되는 직구와 포크볼을 앞세운 기교파 마무리 정재훈은 그 해 30세이브를 올리며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또한 그 해 홀드왕(28홀드)이 된 이재우를 필두로 사이드암 김성배, 당시 2년차 우완이던 이원희 등이 계투에서 분전하며 한국시리즈 진출 밑거름이 되었다.
없는 살림에서 꺼내든 물음표가 느낌표가 된 과정 속 의외의 성적표를 받았던 두산이다. 현재 두산 또한 우승후보라던 예상과 달리 하위권까지 추락했고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의 잇단 부진과 전열 이탈로 투수진 구축이 힘든 상태다. 그 가운데 노경은이 서서히 필승 계투가 되고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희망점이다.
노경은의 최근 활약이 대체 마무리감으로 떠오르는 광속 우완 김강률을 비롯한 다른 유망주나 1.5군 투수들, 나아가 다른 백업-2군 선수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번에 못하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극단적 평가까지 받던 노경은은 그렇게 두산의 초심을 일깨우고 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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