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투입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선수에게 승부조작은 말 그대로 사치였다.
대구 FC의 김민구는 올해로 만 27세다. 일반인라면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을 때지만 축구 선수로서는 벌써 중견급이다. 어느 팀에서도 중고참에 속한다. 그렇지만 김민구는 신인이다. K리그 무대를 밟은 것이 이번 시즌 처음이다. 지난해까지 그는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다.
김민구에게 지난 2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됐다. 그는 상주 시민운동장서 열린 상주 상무와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16라운드 원정 경기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K리그 10경기 만에 나온 프로 데뷔골이었다. 자신의 활약이 자기도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는 "너무 행복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K리그 무대서 뛰는 것은 김민구의 어렸을 적 꿈이었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2007년 그가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1년이 지나서야 내셔널리그의 강릉시청에 입단할 수 있었지만 꿈꾸던 프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내셔널리그 입단과 동시에 프로 무대의 꿈을 포기하지만 김민구는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지난해 경찰청에서 복무를 마친 그는 K리그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 대구에 번외로 지명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프로선수가 됐지만 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아니다. 번외지명 선수는 연봉 2000만 원이 안되는 축구계의 '88만원 세대'다.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면 1년 뒤에 팀과 재계약을 맺지 못할 수도 있다. 단지 새로운 시작을 한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김민구는 행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내에서 열심히 뛰었다. 그가 출전한 10경기 중 선발로 나온 것은 단 3경기. 2일 상주전을 제외하고는 2군들의 무대로 전락한 컵대회였다.
정규리그서는 대개 종료 2~3분 전에 투입됐다. 그는 "전남전에서 3분을 뛰었고, 서울전에서도 3분을 뛰었다. 그 경기들을 모두 이겼다. 아주 적은 시간을 뛰었지만 뛰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최근 대구는 승부조작 사태로 많은 주축 선수들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김민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민구에게 축구는 돈보다 좋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민구는 "(승부조작 사태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단지 뛰는 것 자체가 행복할 뿐이고, 아직도 축구를 더 배우고 싶은 선수다. 그래서 지금도 도전하려고 한다"며 오직 축구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민구에게는 승부조작은 사치였다. 그가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승부조작의 표적이 김민구와 같이 연봉이 적은 선수들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축구가 간절했다. 연봉이 적고 기량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밑바닥에서 시작한 그들의 축구를 위하는 마음은 어떤 선수보다 위대했다.
sports_narcotic@osen.co.kr
<사진> 상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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