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5일만의 10이닝' 양훈, "나도 놀랐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7.06 08: 20

"10이닝을 던진 건 야구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한화 7년차 우완 투수 양훈(25)이 일을 냈다. 양훈은 지난 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LG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10이닝 6피안타 1볼넷 7탈삼진 1실점으로 괴력투를 펼쳤다. 비록 승리를 얻지 못했지만, 근래 보기 드문 10이닝 피칭으로 모두를 놀래켰다. 한화도 양훈의 역투를 발판삼아 연장 12회 접전 끝에 2-1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승리의 중심에는 1회부터 10회까지 마운드를 지킨 양훈이 있었다.
▲ 7년만의 선발 10이닝

선발투수 10이닝 피칭은 7년만의 일이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지난 2004년 10월25일 삼성 배영수가 대구구장에서 열린 현대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동안 116개의 공을 던지며 볼넷 하나를 내줬을 뿐 탈삼진 11개 포함 비공인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바 있다. 페넌트레이스로 한정할 경우 지난 2004년 5월6일 현대 마일영(현 한화)이 대구구장에서 삼성을 상대로 10이닝 동안 130개 공을 뿌리며 1피안타 2볼넷 8탈삼진 1실점(비자책)으로 완투승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7년2개월 정확히 2615일 만에 나온 선발 10이닝 피칭이었다.
경기 후 양훈도 스스로에게 놀란 모습이었다. 그는 "야구를 시작한 이후 10이닝을 던진 건 처음이다. 나도 놀랐다. 내게는 정말 의미있는 경기였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양훈은 지난 5월28일 잠실 두산전에서 생애 첫 9이닝 완봉승을 거두기 전까지 긴 이닝을 소화하는 것과 거리가 먼 투수였다. 주로 구원으로 활약했고 선발로는 5~6이닝이 한계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깼다. 그리고 이날 생애 첫 10이닝 피칭으로 존재감을 증명했다. 총 투구수는 125개밖에 되지 않았고, 10회에도 최고 146km가 나왔다.
▲ 스스로 이겨낸 한계
이날 양훈은 2회 먼저 선취점을 줬다. 2회 1사 후 정성훈-조인성-정의윤에게 3연속 좌전 안타를 맞고 1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그 이후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펼쳤다. 2회 1사부터 9회까지 이진영에게 안타 2개를 맞은 것이 전부였다. 9회까지 총 투구수는 107개였고 타선은 9회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이윽고 10회. 마운드에는 양훈이 있었다. 첫 타자 조인성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고 득점권 위기에 몰렸다. 대타 윤상균은 고의4구로 걸렀다. 1사 1·2루. 하지만 여기서 양훈은 박경수-박용택을 차례로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포효했다. 한대화 감독은 "조인성에게 맞아도 뺄 생각이 없었다. 그 상황을 이겨보라는 의미에서 냅뒀다"고 설명했다.
 
양훈이 박용택을 헛스윙 삼진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오자 정민철 투수코치가 더 기뻐했다. 양훈은 "정 코치님께서 잘 던졌다고 칭찬해주셨다. 정 코치님께서 어려울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오셔서 편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좋았다. 어떻게 하라는 주문이 아닌 맞아도 좋으니까 자신있게 던져라고 말씀하신게 힘이 됐다"고 말했다. 9~10회에도 145km 이상 강속구를 뿌릴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자신감이었다. 그는 "있는 힘껏 던졌다. 이전에는 맞춰 잡는 피칭에 집중했지만 위기 상황이니까 모든 걸 건다는 생각으로 승부했다"고 설명했다. 양훈은 스스로 한계를 이겨냈고 한 단계 성장했다. 10이닝. 류현진도 하지 못한 걸 양훈이 해냈다.
▲ 완급조절 진짜 선발
이날 양훈은 직구(54개)보다 체인지업(29개)·슬라이더(26개)·커브(16개) 등 변화구 비율이 더 많았다. 최고 147km 직구를 요소요소에 던졌지만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은 게 효과적인 피칭으로 이어졌다. 양훈은 "커브와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고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은 게 통했다. 그런 식으로 강약조절하고 완급조절하면서 투구수가 줄어든 게 좋았다. 어느 순간 보니 볼넷이 하나도 없더라"며 "10회에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투구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볼넷이 없으니 투구수가 팍팍 줄어든다"고 했다. 이날 윤상균에게 어쩔 수 없이 고의4구를 내주기 전까지 양훈은 사사구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투구수가 줄었고 10회까지 쌩쌩하게 던질 수 있었다.
양훈은 "지난번에 완봉승을 한 이후 확실히 자신감을 얻었다"며 "이전에는 5~6회만 되어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6이닝 이상 쉽게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데뷔 첫 9이닝 완봉승 이후 양훈은 경기당 평균 7.24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6이닝 이상 피칭이 7경기 중 5차례나 된다. 이 기간 동안 양훈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없다. 이닝이터가 된 것이다. 그는 "선발투수로는 첫 풀타임이다.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듯하다. 완급조절이나 운영능력이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좋아진 게 느껴진다"며 "남은 시즌 로테이션을 잘 지키고 싶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부상없이 잘 던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한대화 감독은 "양훈이 지난번 완봉승한 다음에는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지 지켜볼 것"이라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화에 큰 투수가 탄생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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