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이후 홈런을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해 그간 세칭 ‘똑딱이 타자’로 불리던 선수들의 ‘0’홈런 클럽 탈퇴가 올 시즌 줄을 잇고 있다.
지난 4월 5일, 2007년 두산에 입단한 오재원(26)이 397경기 1040타석 만에 프로데뷔 첫 홈런(목동 넥센전)을 신고한 데 이어, 같은 달 27일에는 대주자 전문인 삼성의 강명구(31)가 잠실 두산전에서 역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2003년 삼성에 입단한 강명구로서는 햇수로 9년(프로 7년차), 361경기 210타석 만에 처음 느껴본 손맛이었다.
그리고 6월 3일과 7일엔 2004년 데뷔한 두산의 윤석민(26)과 2002년 데뷔한 삼성의 손주인(28)이 각각 91경기 276타수와 172경기 264타수 만에 ‘0’ 홈런 타자 클럽에서 빠져 나왔다.
이 밖에도 비 주전 또는 데뷔 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삼성의 모상기(24), 김상수(21), 배영섭(25) 그리고 두산의 김재환(23) 등이 올 시즌 자신의 생애 첫 홈런을 역사에 아로새기는데 성공한 선수들이다.
물론 홈런 하나도 없던 그들이 갑자기 홈런을 펑펑 때려내는 선수로 급변신한 것은 아니지만, 프로야구 홈런 역사부문에 있어 이방인의 굴레를 벗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 지는 불을 보듯 훤하다.

개인통산 100승 이상을 거두고 지금은 은퇴한 전설 급 투수가 오래 전 사석에서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내가 던진 공이 제대로 통타 당했다 싶은 순간엔 덜컥하는 마음이 들지만, 장타력이 빈약한 타자에게 제대로 맞았다 싶을 때는 오히려 불안감이 들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를 보다 보면 파워가 약한 타자들의 경우, 방망이 중심에 맞았다
싶은데도 외야수에게 타구가 걸리고 마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바로 이점을 짚어 말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투수들이 그러한 확신을 갖기란 점점 어려워지는 모양새로 변해가고 있다. 파워가 상대적으로 딸려 보이는 타자라 하더라도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걸리면 타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멀리 날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는 근력강화를 위한 운동을 빼놓지 않고 있는 선수들의 과거와 다른 몸 만들기 운동형태도 형태지만, 근래 들어 야구방망이 제작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단풍나무의 딱딱한 경도가 과거 물푸레나무 방망이와는 사뭇 달라 타구의 반발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최근 단풍나무로 만든 방망이가 자주 부러지면서 그 파편이 관중석까지 날아가 관중이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하자 단풍나무 방망이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만큼 야구방망이의 재질이 전보다는 단단한 상태로 제작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지(일명 쉽게 포구할 수 있는 타구를 일컫는 야구계 통속어)라고 생각해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중견수 머리 위를 넘어 홈런이 되었다니까요!”
“요즘 같으면 난 무서워서 수비 못해요. 타구 강도와 스피드가 옛날이랑은 비교가 안돼!”
근자에 은퇴한 어느 대 투수와 현역시절 유격수로 견실한 수비를 보여주었던 모 구단 2군 감독의 말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과거 역사 속 ‘0’홈런 클럽에 가입된 선수들은 누가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대표적인 선수는 프로 원년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8년간 롯데-해태-태평양을 돌며 선수생활을 이어갔던 좌타자 김일환이다. 446경기를 치르는 동안 1075번 타석에 들어섰지만 홈런은 단 1개도 쳐내지 못했다. 역사상 1000번이 넘는 타석 수에도 홈런을 기록하지 못한 유일한 타자이기도 하다. 해태 소속으로 세 차례(1983,86,87)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기도 했던 그였지만 홈런 역사에 ‘김일환’이라는 이름은 없다.
또한 1991년 입단해 1996년까지 해태의 내야 이곳 저곳을 책임졌던 양회열도 204경기 536타석 동안 홈런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같은 팀 소속 내야수 김민철도 2001~2006년까지 333경기 440타석 동안 홈런과 인연을 맺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1997~2001년 사이 삼성에서 활약한 황성관(213경기 426타석), 2003~2008년 SK의 김형철(152경기 151타석), 1992~1997년 롯데의 김미호(170경기 279타석), 1992~1998년에 걸쳐 빙그레-OB-쌍방울을 전전한 박상현(185경기 189타석), 1986~1992년 롯데의 임경택(149경기 264타석) 등이 100타석 이상 출장하고도 ‘0’홈런 클럽에 이름이 올라간 선수들이다.
타석 수가 꽤 찼음에도 ‘0’홈런 상태를 진행 중인 현역으로는 2006년 데뷔한 롯데의 황성용(28)이 있다. 2011년 현재 기준(7월초)으로 190경기 432타석 동안 1군에서는 홈런과 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2009년 데뷔한 삼성의 유격수 김상수 역시 지난해까지 198경기 605타석에도 홈런이 없던 현역선수였지만 올 시즌 홈런 ‘0’ 딱지를 기어이 떼어냈다.
역으로 프로 데뷔 첫 타석부터 홈런을 날린 성질 급한(?) 타자는 누가 있었을까?
지금까지 역사에 기록된 데뷔 첫 타석 홈런타자는 모두 4명. 1998년 조경환(롯데)을 비롯 2001년 송원국(두산), 2002년 허일상(롯데), 2008년 권영진(SK) 등 네 명이 생애 첫 타석에서 ‘잭팟’을 터뜨린 타자로 연감에 올라있다.
이 중에서도 2001년 송원국의 경우는 데뷔 첫 타석 홈런기록도 기록이지만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을 때려낸 것으로서 그야말로 군계일학의 홈런 진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삼성의 모상기와 두산의 윤석민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앱 다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