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금 에이스가 빠져있다. 류현진이 지난달 29일 왼쪽 등 근육통으로 1군 엔트리에 빠져있는 상황. 하지만 류현진이 빠진 상황에서도 3승4패로 나름 선전하고 있다. 그 주역 중 하나가 7년차 우완 투수 양훈(25)이다.
양훈은 지난 5일 대전 LG전에서 10이닝 6피안타 1볼넷 7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했다. 총 투구수는 125개였고 이 중 85개가 스트라이크였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7km. 비록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10이닝 역투로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양훈이 기록한 10이닝 피칭은 지난 2004년 5월6일 현대 마일영(현 한화)이 대구 삼성전에서 10이닝 1피안타 2볼넷 8탈삼진 1실점(비자책)으로 완투승한 이후 7년2개월 날짜로는 2615일 만에 나온 것이다.
양훈의 10이닝 피칭을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이 바로 정민철 투수코치였다. 정 코치는 이날 고비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가 양훈에게 힘을 북돋아줬다. 10회 2사 1·2루에서 박용택 타석에서는 한대화 감독과의 상의 끝에 양훈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양훈이 박용택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들어올 때 정 코치는 한걸음에 벤치에서 불펜까지 달려가 양훈의 얼굴를 어루만지며 기뻐했다. 정 코치는 "쉽지 않은 순간을 이겨낸 훈이가 대견했다"고 했다.

정 코치는 "9이닝과 10이닝은 또 다른 것이다. 스스로 고비를 이겨내면서 '나도 이 정도를 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훈은 지난 5월28일 잠실 두산전에서 생애 첫 9이닝 완봉승을 했다. 그 이후 7경기에서 2승2패 평균자책점 3.02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양훈이 던진 50⅔이닝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수치. 경기당 평균 7.24이닝을 던지는 이닝이터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 코치는 "요즘 투수들은 유리 어깨가 된지 오래다. 투구수뿐만 아니라 이닝만 보고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투수들도 있다. 5이닝만 바라보고 던지는 투수는 결국 5이닝 투수밖에 되지 않는다"며 "훈이도 5회만 넘기면 되는 투수로 있었다. 하지만 한 번 고비를 넘기고 깨달은 뒤 달라졌다. 이제 7~9이닝은 충분히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양훈도 "선발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고 자가진단했다.
또 하나의 비결은 커브에 있다. 정 코치는 "커브가 정말 유용한 공이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을 수 있고, 던질 때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체력을 세이브하고 투구수를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양훈은 "2년 전부터 커브를 연습했지만 실전에는 던지지 못했다. 하지만 정민철 코치님이 가르쳐주신 후 실전에서 쓰고 있다"며 "강약조절을 하며 던지니 투구수가 팍팍 줄어든다. 10회에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코치는 한대화 감독의 뚝심에도 놀랐다. 정 코치는 "감독님께서 승리가 걸려있는 상황에서도 훈이에게 맡기자고 하시더라.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으신데 선수의 미래를 보고 극복하길 바라셨다. 괜히 야왕님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감독은 "10회 첫 타자 조인성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그때도 내릴 생각이 없었다. 그 상황을 한 번 이겨보라는 의미에서 내버려뒀다"며 "그 덩치에 그 정도는 던져야 되지 않겠나"라며 껄껄 웃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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