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안 되면 그게 실력이다".
지난 12일 사직구장. 경기 전 롯데 덕아웃의 화제는 내야수 조성환(35)이었다. 이날 조성환은 평소 쓰지 않았던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교정용 안경을 쓴 채로 연습에 임했다. 야구를 시작한 뒤로 안경을 쓰고 플레이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도움이 되는 건 뭐든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왜 타격이 안 되는가 혼자 고민도 많이 했었다. 한 달 전부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는데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고 털어놓았다.
롯데 양승호 감독도 기이하게 생각한 부분이었다. 지난해 조성환은 타율 3할3푼6리로 이 부문 전체 3위였다. 2008년 복귀 후 3년간 타율이 3할2푼2리. 그러나 이날 경기 전까지 조성환의 타율은 2할3푼5리에 불과했다. 양 감독은 "타율이 2~3푼 정도는 떨어질 수 있어도 1할이나 떨어지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담을 해보니 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안경을 쓰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답답한 건 조성환 본인이었다. 그는 "공을 자세히 봐야 하는데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선명도가 떨어지니 답답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는데 부진이 계속되니 안과라도 찾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며 "안경을 끼고도 안 되면 그게 실력이다. 나에게는 마지막 보루"라고 절박함 심정을 이야기했다. 사실 안경도 팀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마련한 것이었다. 지난해까지 주장이었고 올해도 팀의 고참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한 것이 마음 속 깊은 짐으로 남아있던 그였다.
조성환은 "팀에 보탬이 되려고 다방면을 생각했다. 안경도 그 일환이다. 팀의 고참으로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하루빨리 안경에 적응해야 한다"며 "그동안 공이 뿌옇게 보이고, 타격 밸런스가 많이 흐트러져 있었는데 어차피 공보고 공치기다. 확실히 안경을 쓰니 선명하게 잘 보인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양승호 감독도 "안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대타로 기용하며 시간을 주겠다"며 조성환을 배려했다.
그리고 6회 대타 기회가 찾아왔다. 7-0으로 리드하던 6회 1사 1·2루. 한화 마운드에는 이날 트레이드로 새롭게 합류한 우완 김광수가 있었다. 조성환은 김광수의 4구째 바깥쪽 높은 129km 슬라이더를 통타,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15m 쐐기 스리런 홈런을 쏘아올렸다. 지난 5월29일 광주 KIA전 이후 21경기 만에 터진 시즌 5호 대포 아치였다. 8회에도 좌완 윤근영을 상대로 좌전 안타를 때리는 등 2타수 2안타 3타점 만점 활약으로 안경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조성환은 "좋은 상황에 투입해주신 감독님께 감사하다"며 "안경 효과는 아직 시기상조다. 안경을 쓴 것도 결국에는 잘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안경 효과 그 자체보다 안경을 착용함으로써 팀에 보탬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안경 효과가 첫 날부터 나타났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조성환이 살아나야 진짜 롯데가 된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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