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다'(2008), '의형제'(2010) 두 편의 영화로 충무로에서 가장 촉망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장훈 감독. 그가 올 여름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를 다룬 ‘고지전’으로 관객 앞에 선다.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휴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던 1953년,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와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전쟁 영화다.
전쟁영화라는 장르적 특성만 보고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 다면(또는 선택한다면)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고지전’엔 거대한 스케일의 교전이나 시선을 압도하는 물량공세는 없다. 감정 과잉도 없다. 대신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는 최전방 고지의 교착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애를 스크린 위에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고지전’은 그렇게 관객의 마음에 먹먹한 감동과 진한 울림을 준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 여성 관객들은 전쟁영화를 대체로 안 좋아하지 않나. 극 중 멜로가 강한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다. 전쟁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처절하다. 상황 자체가 그렇다. 전쟁이라는 상황을 부각시키기 위해 역으로 인간적인 부분들, 관계, 느낌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시나리오 자체는 더 건조했는데 배우들과 촬영하면서 감정선을 더 집어넣었다.”
그는 휴먼 대작 ‘고지전’을 완성시키기 까지 한국전쟁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많이 참고했다. 그 당시 고지의 모습, 기록사진들 보면서 그 강렬하고 처참한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땅 자체가 안고 있는 느낌, 장훈 감독은 그래서 “고지전은 한국적 흙빛을 띄고 있다”고 말했다.

‘고지전’은 고수, 신하균, 류승수, 고창석 등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들과 이제훈, 이다윗 등 신예 배우들의 연기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쟁보다 사람에 포커스를 맞춘 이 영화가 극 말미까지 힘을 잃지 않고 관객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건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김옥빈을 제외한 모든 연기자들이 남자였던 촬영현장. 장 감독은 거칠고 무딘 남자들의 심장에서 어떻게 그토록 여리고 구슬픈 감성을 뽑아낼 수 있었을까.
“배우들을 이끌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카리스마, 리더십 이런 건 촬영장에선 안 통한다. 대신 리허설 전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감독, 배우 모두 만족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고 리허설을 했다. 영화 속 인물을 만드는 건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가 극 중의 감정, 상황, 캐릭터의 행동을 완벽히 이해해야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다. 배우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시키지 않았다.”
장훈 감독의 배우들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그간 남성적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적었던 고수에게선 거친 매력을 뽑아내려 애썼다며,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까지 자신의 작품에 모두 출연한 고창석에 대해선 어떤 작업이든 같이 하고 싶은 배우라며 애정을 보였다.
신하균에 대해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배우인데 전쟁영화라는 특성 때문에 그의 미소를 많이 담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신예 이다윗과 이제훈의 연기력에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훈 감독은 특히 촬영장에서 막내이자 전 출연진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이다윗 군에 대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촬영 막바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이 많은 선배 연기자들과 내가 몰래 짜고 다윗의 몰래 카메라를 찍은 적이 있다. 다윗이 연기하다 실수를 했을 때 류승수는 크게 혼을 내고, 고수는 감싸주다 결국 둘이 싸우는 설정이었다. 다윗이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던 건데 다윗이 울어버렸다. 특히 고수는 장난으로라도 남을 상처주는 걸 싫어해서 분위기가 가라앉아버렸다. 결국 다윗을 위로하는 분위기로 끝났는데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이제 모든 작업을 마치고 관객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간. 장 감독은 흥행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초초함보다 “다른 분들의 돈을 가지고 영화를 찍은 만큼 책임을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담담한 심경을 털어놨다.
“영화를 만들 땐 이게 최선이라 믿고 만든다. 하지만 개봉하는 순간 영화는 관객의 것이 된다.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 이 영화는 무거울 수도 있고 진지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시기에 이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궁금하다.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 고생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만큼만 관객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금전적 보상보다 마음의 보상이 되니까.”
‘고지전’은 20일 개봉한다.
tripleJ@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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