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고교 최대어 투수는 지난 8년을 어둠 속에서 보내며 방출 위기까지 맞았다. 그러나 동료의 부상을 틈 타 전지훈련 막차에 탔고 1,2군을 오락가락하다 필승 계투로까지 자리잡았다. 프로 9년차 우완 노경은(27. 두산 베어스)이 이 현재진행형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성남고 동기 박경수(LG)와 함께 고교 최대어로 꼽히며 두산에 1차 지명(계약금 3억8000만원)으로 입단했던 노경은. 그러나 고질적인 제구 난조에 병풍, 팔꿈치 부상, 허리 부상, 발목 부상이 연달아 겹치며 1군 자원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성장이 정체되었던 노경은에 대해 "정말 좋은 잠재력을 지닌 녀석인데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도 노경은은 지난해 유일한 장점이던 직구 구위까지 잃어버리며 방출 위기까지 놓였던 바 있다.
지난해 말 마무리 훈련서도 노경은은 발목 부상으로 인해 국내에서 잔류했다. 팀에서도 올해 초 일본 전지훈련을 준비하며 노경은을 일찌감치 제외한 채 전지훈련 명단을 확정했으나 변수가 생겼다. 우완 박정배가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아쉽게 잔류군으로 이동한 것.
박정배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이는 바로 노경은이었다. 김경문 전 감독은 노경은에 대해 "구위만큼은 나무랄 데 없는 녀석이다. 롱릴리프감으로 성장해주었으면 한다"라며 다시 살아나는 기대감의 불씨에 주목했다. 전지훈련 막판 페이스도 좋아 노경은은 다시 기회를 잡는 듯 했다.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5월 한 달간 노경은은 불펜 추격조로 나섰으나 9경기 평균자책점 7.53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듯 했던 순간. 그러나 6월서부터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6월 한 달간 노경은의 성적은 8경기 1승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1.96으로 뛰어났다. 150km을 상회하는 빠른 직구는 물론 커터 그립을 잡고 응용해 던지는 최고 144km의 슬라이더도 꿈틀거리며 위력을 내뿜었다. 국내 투수들 중 슬라이더 평균 구속만 따지면 노경은은 140km대 초반으로 단연 최고 구속을 자랑한다.
7월에도 노경은은 3경기 1승 무패 평균자책점 0으로 활약 중이다. 특히 한 달간 피안타율이 8푼3리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의 구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17일 잠실 넥센전서도 그는 2-3으로 뒤진 상황서 2⅓이닝 퍼펙트(탈삼진 5개) 쾌투로 분전했다. 현재 그는 5경기 연속 무실점 중이다.
"2군에 내려간 뒤 선발로 뛴 게 아니라 마무리로 뛰었어요. 여러가지 위기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출격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투구 밸런스를 잡으면서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145km 이상은 던질 수 있는 요령을 파악했어요. 마인드컨트롤 요령도 어느 정도 익힌 것 같아요. 요즘은 제가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무명 선수가 일약 스타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촉망받던 유망주가 프로 벽을 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는 그보다 더 많다.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먼지 쌓인 재고품으로 전락하는 듯 했던 노경은. 뒤늦게 제대로 큰 걸음을 내딛은 그의 프로야구인생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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