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남자 고수가 변했다. 차갑고 거친 남자 그 이상으로 확 변했다. 공포, 분노, 슬픔까지 다 녹아 없어진 건조한 영혼으로 고수가 스크린을 울린다.
배우 고수가 100억 원대의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휴먼 대작 ‘고지전’으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고지전’은 휴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던 1953년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와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전쟁 영화. 극 중 고수는 전쟁의 공포에 덜덜 떨던 순수한 청년에서 살육에 무감각해진 전쟁광으로 변모하는 ‘김수혁’ 중위로 분했다.

“시나리오 상에서 ‘수혁’이는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나는 수혁의 겉모습보다 내면의 변화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당시 수혁이 어떤 일을 겪었고, 무엇을 봤을까. 초반에 보여 지는 수혁의 모습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일차원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수혁은 포항전투를 거쳐 악어중대에 속한 이후 수많은 고지전투를 치러야 했다. 전쟁은 수혁에게 일상이자 지옥이었다. 단순하게 마초적인 잔인함을 보여주기보다 사람이지만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며 연기했다.”
‘고지전’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전쟁의 처참함을 고발한다. 또 그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담담하게 그린다. 고수가 맡은 ‘수혁’은 ‘고지전’이 전달하고픈 메시지 그 자체이자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고수는 그 배역을 너무나 완벽히 소화해 냈다.
“시사회 때 영화 완성본을 처음 봤다. 긴장되고 떨리더라. 오랜 시간동안 촬영했고, 다 같이 고생한 시간, 그 결과물을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 사실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촬영 했던 상황, 내가 어떤 생각으로 연기를 했나, 이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다음날 기회가 돼서 한 번 더 봤는데 두 번째 보니까 더 재미있더라.(웃음)”

그간 선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고수. 하지만 그는 이번 캐릭터를 통해 예전과는 180도 다른 연기를 선보였다. 고수는 ‘고지전’을 통해 지금껏 감춰두고 있던 연기 스펙트럼의 일부를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조용히 숨어있던 그의 악한 내면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순간, 극의 긴장감은 폭발한다.
“‘수혁’의 모습은 내 모습의 일부다. 분명 모든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약간은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나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가 있으니까. 수많은 내 모습 중 하나를 수혁이를 통해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수혁은 수혁일 뿐 고수는 아니다.”
‘고지전’은 스태프들은 물론 배우들에게도 긴 시간, 힘든 촬영이었다. 하지만 고수는 그 속에서도 작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산속에서만 촬영하니까 주말 시간이 되면 배우들끼리 도시에 나들이를 나갔다. 영화도 보고, 포장마차에도 가고. 하루는 창석이 형, 승수 형, 하균이 형, 다윗과 시내에 나가 2차까지 하고 잤는데 아침부터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더라. 장훈 감독님의 작품 ‘영화는 영화다’가 TV에서 하고 있었다. 감독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가 없구나 싶어 웃었다. 사실 감독님은 조용하시지만 하실 말씀은 다 하는 스타일이다. 현장에서도 지칠 때까지 연기를 했다. 감독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점심에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전쟁 영화의 끝은 짐작하기 어렵다. 눈이 시리도록 슬프기도, 애잔한 여운이 남기도 한다. ‘고지전’ 속 고수는 세 가지 다른 결말을 손에 쥐었었다.
“나는 연기를 한 입장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극에서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느냐 보다 전체적인 톤이 중요하다. 감독님, 작가님과 오래 상의한 끝에 현재 결말을 택했다. 처음 봤을 땐 괜히 이걸 택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두 번 보니까 전체적으로 이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지막은, 내가 봐도 짠하다.”
아비규환의 전쟁터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애를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 ‘고지전’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tripleJ@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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