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의 대중가요 가사 심의와 관련, 연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논란은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 가혹한 심의기준도 문제지만 가요계 역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셈이다.
지금의 음반심의위원회가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에 따라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대중가요에 칼을 들이대기 시작한 건 지난 2006년. 그동안 지금과 똑같은 기준으로 매달 '19금' 딱지를 붙여왔으나, 가요계의 대처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 유감 표명으로 '끝'
본격적인 논란은 2008년 비의 '레이니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문제가 된 가사는 '떨리는 네 몸 안을 돌고 있는 나의 magic stick,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 느낀 body shake' 부분. 성행위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었다.
비 측은 "비가 오래 전부터 구상해온 '지팡이 퍼포먼스'를 위해 개연성 있는 가사를 응용한 것으로, 선정성을 의도한 바는 없다. 심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고 유감을 표했다. 비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례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은유적 표현이기는 하나 '매직 스틱'은 분명히 남자의 성기로 해석될 수 있다"며 심의위원회 만장일치로 19금 딱지를 붙였다.
이후로 수많은 곡이 같은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았고, 그때마다 가수들과 제작자들이 한 목소리로 유감표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보다 더 목소리를 높인 사례는 거의 없었다. 정부에 반해 계속해 큰 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고, 언론의 주목도 부담스러워 그저 '액션'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 행정 소송 겨우 두 건
SM엔터테인먼트는 가요기획사 중 유일하게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했다. 2008년 여성가족부는 동방신기의 '주문' 가사에 대해 "단어들을 다 떼어놓고 보면 문제가 없지만, '널 가졌어' '언더 마이 스킨(Under my skin)' 등의 표현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 해당곡에 '19금 딱지'를 붙였는데, 결과는 SM의 승소.
법원은 가사에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할 정도로 성행위의 방법이나 감정, 음성 등을 과도하게 묘사하고,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기술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야 유해매체물로 볼 수 있는데, '주문'의 가사가 오해의 여지는 있어도 성행위를 지나치게 묘사했거나 성 윤리를 왜곡 시키는 수준까진 아니라고 판단했다.
최근 논란이 된 '술' 소재의 가사도 SM엔터테인먼트가 소송을 진행 중이다. SM더 발라드의 '내일은..' 가사 중 '술에 취해'가 문제가 돼 청소년유해매체로 판정되자, 또 한번 행정소송을 냈으며, 내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행정소송은 가사 심의에 가장 강력한 반대 입장이긴 하지만, 기회비용이 꽤 큰 일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는 "현재로선 가사 심의에 불만을 품고 소송까지 간 케이스는 SM엔터테인먼트 관련 두 건이 전부"라고 밝혔다. '비가 오는 날엔'으로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은 비스트 측도 소송을 고려 중이라, 소송이 확대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타이틀곡 아니면 무관심.. 홍보 전락
2008년 뜨거운 논쟁을 뒤로 하고, 음반심의위원회는 매달 유해매체를 쏟아냈지만 이후 한동안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준에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일까.
가요계는 '내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 풍토를 자성하고 있다. 영화-드라마 등 공동 작업 통해 연대를 잘하는 배우업계와 달리 각 기획사별로 각개전투를 벌이는 가요계가 좀처럼 뭉치질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가요관계자들이 심의에 걸렸다 해도 타이틀곡이 아닌 곡은 향후 활동에 큰 지장이 없으므로 그냥 넘어가버렸고, 다른 가수가 당한 일에도 불만의 목소리만 냈을 뿐 함께 대안을 모색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여성가족부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 받은 걸 홍보 보도자료로 작성에 일회성 이름 알리기에 이용하기까지 했다.
음악 팬들 역시 비, 동방신기, 비스트 등 인기 가수들이 연루됐을 때에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 큰 논란이 된 술 관련 가사도 이미 몇달 전부터 인디 가수들의 곡에 무더기 판정을 내린 근거가 돼왔던 터였다.
여성가족부도 "가요계와 함께 발전적인 논의를 하는 등의 기회가 그동안 거의 없었다"고 확인했다. 이어 이제 가요계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고 약속했다. 8월 중순 간담회와 토론회를 마련하겠다는 것. 가사 심의가 5년째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미뤄볼때, 굉장히 뒤늦은 자리다.
여성가족부는 또 "행정 소송 외에도 가요계에서 반대 입장을 보다 쉽게 전할 수 있는 재심의 제도를 마련했다"면서 "이미 심의가 내려진 곡도 가수 측이 원하면 재심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요계도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상태. 이번 '논란'으로 수년째 시끄러운 음반 가사 심의 제도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곡은 오후 10시 이전 보도용 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 프로그램에선 해당 표현을 삭제한 상태에서만 전파를 탈 수 있으며, 음반 및 음원에 청소년 구입 금지 스티커를 부착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징역2년 이하, 벌금 1천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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