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는 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구위와 제구력을 모두 갖춘 우완 에이스로서 해태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구요. 그러나 질긴 부상의 질곡은 그를 타자로까지 이끌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운드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진(37. 전 KIA 타이거즈). 지난 23일 정들었던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고 웨이버공시된 그는 유일하게 영입 의향서를 제출한 LG 트윈스로 이적했습니다. 박종훈 감독을 비롯한 현장에서도 이대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곧바로 1군 전력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이대진은 KIA 측의 은퇴 및 코치직 제안을 뒤로 하고 현역 생활 연장을 택했는데요. 냉정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모한 도전입니다. 그는 은퇴를 택했더라면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뇌리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대진은 기교파 투수로서 의미있는 재기를 위해 위험한 도전을 택했습니다.
올 시즌 이대진은 지난 5월 3일 넥센전서 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것이 유일한 1군 등판입니다. 2군 남부리그에서는 14경기 2승 1홀드 평균자책점 3.22(30일 현재)를 기록 중이구요. 그의 프로 통산 19시즌 성적은 100승 73패 22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3.54입니다. 잇단 어깨부상과 수술-재활이 아니었더라면 우완 선발로 제대로 된 한 획을 그었을 투수입니다.
시선을 LG 쪽으로 돌려볼까요. 지난 8년 간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뒤 올 시즌 9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LG는 강한 타선과 박현준-레다메스 리즈-벤자민 주키치 선발 삼각편대를 갖추고 있습니다만 현재 41승 42패를 기록하며 5위 롯데에 반 게임 차로 쫓기고 있습니다. 좌완 에이스 봉중근의 팔꿈치 수술 공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계투진이 풍족한 편이 아닙니다.
아직 이대진이 LG로 둥지를 틀 경우 보직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만 현 상황에서는 고정 선발이나 셋업맨보다는 스윙맨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롱릴리프를 기본으로 때에 따라서는 깜짝 선발로도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대진이 LG에 불어넣을 수 있는 무형의 힘입니다. 공식적인 가세와 함께 단숨에 '적토마' 이병규와 함께 선수단 맏형이 되는 이대진은 선수 생활 동안 네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베테랑입니다. 현재 LG 선수단 내에서 LG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경험한 선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대진은 재기 성공률 16.7%에 불과한 어깨 수술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빠른 직구를 잃어버린 이대진입니다만 그는 2007년 7승, 2008년 5승을 거두며 충분히 선수단에 힘을 보탤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1차적으로는 동병상련을 겪은 이동현의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있네요. 또한 이대진은 해태 시절 젊은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었던 좋은 마인드와 강심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먼저 다가가고 조언을 구한다면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투수입니다.
암흑기 시절 LG는 '야구 잘 하는 선배가 진짜 선배라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라는 악평까지 받았습니다. 물론 모두가 아닌 일부의 이야기였으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겠지요. LG가 그동안 하위권을 맴돈 데에는 선수 개개인의 실력보다 각자 따로 움직이던 분위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냉정히 생각했을 때 이대진은 현재 야구를 잘 하는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충분히 자신이 잘 던질 수 있는 무기를 마운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LG 투수들이 갖지 못한 '큰 경기 에이스'의 마인드와 정신력을 전달할 수 있는 베테랑입니다.
맏형이 될 이적생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진심어린 이야기에 귀담아 듣는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된다면. 그리고 그 분위기가 비단 이대진 한 선수만이 아닌 선수단 개개인 전체로 퍼져 나간다면 LG의 가을 야구는 결코 꿈이 아닐 것입니다.
farinell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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