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의 데뷔' 허웅, "난 꿈을 갖고 있었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1.08.02 07: 01

"꿈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 꿈을 갖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그러나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는 꿈을 잃지 않고 간직했다. 10년 만에 1군 무대에 데뷔한 SK 포수 허웅(28) 이야기다. 지난 2002년 프로에 입단한 허웅이 1군에 오르기까지는 정확히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그는 모진 풍파를 겪었다. 그래도 지금의 그를 이끈 건 꿈이라는 막연하지만 절대적인 그것이었다. 허웅은 "나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계속 꿈을 갖고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 야구는 내 운명

허웅은 부산 사람이다.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 강인자씨(53)가 부산 사직구장 7호 매점을 운영했다. 어릴 적부터 사직구장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야구를 시작한 뒤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부산고 2학년 때에는 1년 선배인 에이스 추신수와 배터리를 이뤘다. 허웅은 "그때 신수형 볼을 받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멤버로는 정근우와 전병두가 1년 선후배로 있었다. 황금 멤버들과 고교 시절을 보낸 허웅은 2002년 2차 2번 전체 18순위로 현대에 지명받았다. 당시 포수로는 LG에 전체 15순위로 지명된 박영복 다음으로 높은 순위일 정도로 촉망받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해 현대에는 당대 최고의 포수 박경완이 있었다. 2003년 박경완이 SK로 이적한 뒤에는 노련한 김동수가 안방을 철통같이 지켰다. 허웅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많지 않았다. 허웅이 밀린 건 현대 팀 내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군대를 부산 53사단 신병교육대 조교로 다녀왔다"며 "사실 상무에 2번이나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정상호와 박노민한테 밀렸다"고 털어놓았다. 군복무중이던 2006년 7월에는 현대로부터 방출 통보도 받았다. 허웅은 "전역 후 여러 구단에 테스트를 받았지만 되지 않았다. 김해에서 호프집도 했지만 야구가 너무 하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 일본 독립리그까지
허웅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일본으로 이어졌다. 꾸준히 몸을 만들었고 2008년 8월 일본 독립리그로 갔다. 간사이리그 키슈 레인저스에서 8개월 가량 뛰었다. 그는 "포수는 호흡이 중요한데 말이 통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고 했다. 외국인 포수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보낸 8개월도 헛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본기에 중점을 두더라. SK에서 처음 테스트를 받았을 때 김성근 감독님이 캐칭이랑 빠른 송구를 좋아하셨는데 일본에서 많이 연습한것이 도움이 많이 됐다"는 것이 허웅의 말이다.
한국에 돌아온 허웅은 다시 장사를 했다. 그러던 중 현대 시절 배터리코치였던 SK 금광옥 원정기록원과 연락이 닿았다. 그게 2009년 7월의 일이었다. 허웅은 "테스트를 받고 싶다. 지금 상태는 70%"라고 이야기했고, 금 기록원은 "70%로는 어림도 없다. SK에서는 100%가 아니라 400%는 되어야 통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허웅은 "그때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몸을 만들었다 8월에 테스트를 받았는데 송구가 좋았다. 김태균 코치님이 '너 왜 짤렸나'고 할 정도였다. 김성근 감독님도 곧바로 2군에 합류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2010년 허웅은 신고선수로 SK와 계약을 맺었다. 정식선수는 아니었지만 5년 만에 프로 무대에 다시 돌아온 순간이었다.
 
▲ 꿈같은 1군 등록과 출장
SK에서도 가시밭길이었다. 박경완이 있었고, 정상호가 있었다. 그들이 빠져도 최경철 김정훈 김정남 등 다른 포수들에게 우선권이 돌아갔다. 심지어 최동수와 최정까지 포수를 봤다. 하지만 허웅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2군에서 이만수 감독님이 용기를 많이 북돋아주셨다. 신고선수임에도 기회를 많이 주셨다"고 했다. 그가 지독하게 야구에 매달린 건 1군 무대를 한 번이라도 밟아보고 싶은 꿈 때문이었다. 허웅은 "2군에서 그만두기는 죽어도 싫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밤에 1군 매니저로부터 "내일부터 1군에 합류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튿날 곧바로 정식선수로 등록돼 데뷔 후 처음 1군 엔트리에 올랐다.
허웅은 "그때 복근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소리를 마구 질렀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더라. 어머니가 매점하실 때부터 본 그 무대를 밟는다는 생각에…"라며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순간 그의 곁에는 부상당한 어깨를 재활할 때 만났던 여자친구 임두리새암씨(26)가 있었다. 그는 "여자친구를 잘 만났다.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를 만난 후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했다. 여자친구의 존재는 그가 더 야구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서 못하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고 여자친구와도 자주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허웅의 간절함이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꿈의 실현으로 이어졌다.
1군 등록 첫 날에는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튿날 승부가 일찌감치 한화에게로 기울었고, 허웅은 6회부터 대수비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무대. 그는 힘이 넘쳐났다. 6회 1사에서 카림 가르시아 타석에서 2군에서도 자주 호흡을 맞춘 박희수의 3구째가 스트라이크존을 약간 빗겨간 순간 "오케이, 나이스볼!"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는 "가르시아가 소리를 듣고는 '셧업'이라면서 화를 내더라. 그래서 '쏘리, 아임 마이너. 메이저 퍼스트 타임'이라고 짧은 영어로 말했다. 그랬더니 가르시아도 웃더라"며 웃어보였다. 그는 "포수는 나이가 들어도 인정받을 수 있다. 내가 투수나 야수였다면 10년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원래 투수의 공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미트에서 소리 나는 게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다. 10년 만에 오른 1군 무대. 허웅의 10년간 쌓인 갈증 해소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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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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