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시각장애인 ‘수아’ 역, 남 주기 싫었다”[인터뷰]
OSEN 이혜진 기자
발행 2011.08.03 09: 36

김하늘은 언제부터 칼을 벼르고 있었을까.
시각장애인이 살인사건을 목격한 뒤 범인을 추적한다는 설정의 스릴러 ‘블라인드’에서 생에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연기를 펼친 김하늘은 기존에 자신이 선보였던 연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작심하고 달려든다.
극 중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경찰대생 ‘수아’로 분한 김하늘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맹렬하게 범인을 쫒는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부딪치고 깨지고 물고 늘어져서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콕콕 찌른다.

불안하게 허공을 쫓는 눈동자, 바닥을 더듬는 처절한 손짓은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해 작위적이지 않다. 그래서 스크린을 지켜보는 관객은 어느 순간 ‘수아’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답답함, 뭔지 모를 불안함, 갑자기 엄습하는 두려움과 공포는 김하늘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수아’의 감정 그 자체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김하늘이 관객의 숨통을 조이는 스릴러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그간의 밝고 예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근성 있고 묵직한, 그러면서도 내면에 한(恨)이 있는 시각장애인 여성으로 변신했다. 김하늘은 왜 갑자기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무게감 있거나 심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역은 이미 많이 했었다. 단지 그 이유가 사랑에 국한돼 있었을 뿐. 이번 작품은 장애인이라는 캐릭터가 나에게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품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구성이나 스릴감도 좋았다. 단지 이 캐릭터를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나도 궁금하더라. 내가 이 역할을 어떻게 해낼지. ‘이 작품은 꼭 내가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각장애인 ‘흉내’가 아닌 ‘연기’를 하기 위해 김하늘은 촬영 전부터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었다. 맹인 학교에 가 시각장애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몸짓, 시선 하나 하나를 관찰했다. 그들이 쓴 책, 시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도 빠지지 않고 챙겨봤다.
시각장애인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해내는 것도 그에겐 큰 숙제였지만 스릴러라는 장르,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이 사건을 추적한다는 설정은 쉽지 않은 촬영을 예고했다.
“실제로 온 몸에 멍이 든 건 기본이었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촬영 일정 때문에 다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서 찍었지만 촬영 내내 굉장히 겁이 났다. 실제 온 몸이 던져지고 구타당하는 장면은 대역 연기자가 촬영했는데 그 분도 울고, 나도 마음이 아파 많이 울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도 펑펑 울었다는 김하늘은 이 작품에 자신의 에너지를 100% 쏟아낸 듯 보였다. 연기를 끝낸 뒤 꼼꼼히 모니터하는 것은 기본,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 한 컷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져 나갔다.
“촬영할 때 수아한테 더 맞는 행동이 뭘까 철저히 계산하고 연기했다. 기존에 캐릭터 연기할 땐 계산이나 연습보다 자연스럽게 캐릭터 만들어가는 경향이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수아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기 때문에 일단 그런 면을 철저하게 구축한 상태에서 캐릭터를 다듬어 갔다. 단 한 컷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각장애인 분들에게 누가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이번 영화에선 나 자신을 결코 봐주지 않았다.”
 
후회 없이 작품을 찍은 덕분일까. 김하늘은 흥행에 대한 초조함보다 빨리 영화가 개봉해 관객들이 작품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최근 폐막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시민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체육관에서 상영했기 때문에 소리가 울리고 극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는데 내가 범인을 힘껏 후려치는 장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극의 몰입도가 그만큼 좋다는 반증인 거 같다. 빨리 개봉 했으면 하는 조급함이 생긴다.”
최근 SNS로 팬, 관객들과 소통을 시작한 김하늘은 자신에게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에 힘을 얻고 있다. 소통의 기회가 제한됐던 예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겨 기쁘다고 말하는 김하늘.
“나에대한 관객들의 신뢰가 많이 쌓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나가는 방향에 대해 늘 응원해 주시리라 믿는다. 혹시 내가 넘어지더라도 지금까지의 믿음으로 날 일으켜세우주는 분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나에 대한 관객의 신뢰가 쌓인 만큼 나도 관객을 믿는 마음이 커졌다.”
김하늘은 로맨틱 코미디 여왕이란 타이들도 좋지만 또 다른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털어놨다. ‘블라인드’ 이후 김하늘에겐 장르를 불문하고 그 어떤 캐릭터도 자유자재로 연기하는 ‘전천후 여배우’란 타이틀이 생기지 않을까.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 경찰대생이 살인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어 감각만으로 보이지 않는 범인과 사건을 추적해 간다는 내용의 오감 추적 스릴러 ‘블라인드’는 오는 1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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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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