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 역전포' 이호준, 그답게 웃을 수 없는 이유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1.08.04 10: 58

"팀이 1위를 해서 마음놓고 웃는 날 왔으면…."
오랜만에 비친 그다운 웃음이었다. SK 주장 이호준(35)이 역전 끝내기 투런홈런으로 모처럼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잠깐 스쳤을 뿐이었다.
이호준은 3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LG와의 홈경기에 1루수 겸 4번타자로 선발 출장, 패색이 짙던 9회말 믿을 수 없는 역전 끝내기 투런홈런을 터뜨렸다.

안치용이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1사 1루의 찬스를 열었다. 하지만 3-4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더구나 마운드에는 전날 1점차 상황을 극복하고 세이브를 기록한 LG 뉴클로저 송신영이 버티고 있었다. 이호준은 풀카운트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송신영의 6구째 직구가 가운데로 몰리자 놓치지 않았고 중간 담장을 훌쩍 넘겨 버렸다.
이호준은 앞서 2-3으로 뒤진 5회에도 동점 솔로포를 터뜨려 극적인 분위기 연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호준이 한경기에서 2개 이상의 홈런을 친 것은 작년 6월 17일 목동 넥센전 이후 처음이었다. 더구나 끝내기 홈런은 2002년 5월 3일 문학 두산전에서 기록한 스리런홈런으로, 무려 9년만이었다.
경기 후 "휴대폰을 보니 끝내기홈런을 얼마나 오랜만에 쳤는지 알겠더라"면서 "축하메시지와 전화에 일일이 응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고 웃었다. 그렇지만 이내 "요즘 내 장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하루빨리 1위에 올라 마음놓고 웃었으면 좋겠다"고 다시 목소리를 담담하게 가라앉혔다.
이호준은 경기 외적인 문제로는 안티가 없다. 취재진들은 물론 팀동료들에게도 '유쾌함'의 대명사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웃음의 길이가 짧아졌다. 몇년간 괴롭히던 무릎 부상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이제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 것이 시급했다. 게다가 올해는 3년만에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팀은 물론 자신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가진 시즌이었다. 이 때문인지 말수도 줄고 표정도 어두워졌다.
이호준은 이날 경기 전 미팅을 소집했다. 동료들에게 초심, 기본으로 돌아가 기본 플레이에 집중하자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 이호준 스스로를 다잡는 말이기도 했다. 3년만에 주장 자리를 맡았지만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5년만의 최악인 팀 성적은 주장인 이호준을 괴롭혔다. 밤잠까지 설치게 만들었다.
"원형이형이 내게 '너의 장점을 잃어버리지 마라'고 조언을 해줬다"는 이호준이었다. 베테랑 투수 김원형은 지난 8일 문학 롯데전부터 팀에 합류, 선수단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호준은 "평소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겁게 운동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부터 인상을 쓰게 되더라. 그런 모습을 원형이형이 안타깝게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호준은 이날 승리가 팀을 다시 상승곡선으로 이끌길 바라고 있다. "다시 1위를 해서 실컷 웃었으면 좋겠다"는 이호준이다. 실제로 이날 승리로 SK는 2위 KIA에 3경기차로 다가선 것은 물론 1위 삼성과는 4.5경기차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편 이호준은 이날 2개의 홈런을 쳐 2명의 노인에게 무릎 수술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이호준은 지난 3월 척추관절전문 바로병원과 함께 협약을 맺고 올 시즌 홈런을 칠 때마다 저소득층에게 인공관절 수술을 지원하기로 했다. 수술비 중 150만 원을 이호준이 낸다.
이호준에게는 여러 모로 의미있는 홈런이었다. 잠깐이나마 그다운 웃음을 찾을 수 있었던 한 방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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