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의 볼배합이 좋았다"-"뭐, 자기가 잘 던진 건데요".
위압적일 정도의 큰 키를 자랑하는 외국인 투수와 투박한 인상의 젊은 포수. 얼핏 보면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호흡은 찰떡 궁합이다. 올 시즌 최고 외국인 투수 중 한 명인 더스틴 니퍼트(30)와 안방마님 양의지(24. 이상 두산 베어스)의 이야기다.

니퍼트는 지난 3일 잠실 KIA전서 8이닝 동안 10피안타(탈삼진 5개, 사사구 2개) 3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9승(5패, 4일 현재)째를 거뒀다. 10개의 안타를 내주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후속타를 자주 내주지는 않았다. 1회 이종범의 2루타성 타구를 멋진 수비로 잡아낸 정수빈의 수훈도 있었다.
양의지의 활약도 좋다. 기본적으로 니퍼트의 호투를 합작한 양의지는 최근 5경기서 4할7푼1리(17타수 8안타)로 타석에서도 뛰어난 컨택 능력을 자랑 중이다. 2일까지 팀이 4연패를 당하며 활약 면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던 양의지는 3일 승리로 웃음을 되찾았다.
올 시즌 니퍼트는 19경기 9승(완봉승 1차례) 5패 평균자책점 2.59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상당수의 경기가 양의지와 호흡을 맞춘 경기다. 최승환과도 용덕한과도 배터리를 이뤄 좋은 모습을 보인 니퍼트지만 주전 안방마님인 양의지의 리드를 훨씬 자주 보았다.
지난해 신인왕으로 올 시즌 풀타임 2년차인 양의지. 그러나 그는 이미 지난해부터 선발 투수들이 좋아하는 리드를 펼쳐왔다. 지금은 라쿠텐에서 뛰고 있는 켈빈 히메네스 또한 양의지의 리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결정적인 순간 싱커를 던지고 싶어하는 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준다. 가끔 실투가 나와도 '괜찮으니 타자가 어려워하는 몸쪽 공 비율을 높여서 던져도 된다'라며 격려하기도 하면서 던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투수진 맏형 김선우 또한 양의지와 처음 호흡을 맞춘 뒤 "머리가 좋은 친구더라. 어린 나이 답지 않게 담력도 있고. 정말 좋은 포수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한 결과론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투수리드는 투수가 편하게 던질 수 있게 하는 동시에 타자가 어려워하는 코스 배분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양의지 본인은 겸손하다. 3일 경기가 끝나고 만난 양의지는 '따로 결정구 패턴을 바꾼 것이 있는가'라고 묻자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답했다.
"니퍼트한테 따로 주문할 게 있습니까?(웃음) 자기가 잘 던지잖아요. 저는 편해요".(웃음) "양의지의 리드가 정말 좋았다"라는 니퍼트의 이야기에 양의지는 손사래를 치며 좋은 투수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답을 했다. 싱거울 수 있는 대답이지만 원래 양의지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상호 간의 믿음이 없다면 부부 사이도, 연인 사이도 갈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니퍼트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는 양의지라는 좋은 포수가 있기 때문. 그리고 양의지가 올 시즌 포수로서 더욱 성장했다는 평을 받는 데는 니퍼트라는 좋은 투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은 기분좋은 '공생 관계'를 형성하며 '만점 금슬'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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