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잠실, 이대호 인턴기자] "둘 다 아주 무서운 투수였지".
4일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둔 잠실구장. 두산 김광수(52) 감독대행이 현역 시절 활약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김 대행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에 입단해 1992년 은퇴하기까지 2루수로 뛰며 연간 도루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발 빠른 선수였다.
김 대행이 선수 시절 도루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주제가 선동렬(48) 전 감독과 최동원(53) 전 감독의 선수 시절로 옮겨갔다.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꼽히던 두 투수는 선수 시절부터 최고의 자리를 놓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왔다. 결국 두 선수는 1987년 맞대결에서 연장 15회까지 가는 완투 대결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 대행은 선수시절 두 투수를 상대했던 기억을 더듬어 전설의 비교를 시작했다.

김 대행은 선 전 감독의 현역 시절 투구 폼을 흉내 내며 "선동렬은 와인드업 후 릴리스까지 굉장히 부드럽고 길게 나갔는데 그 투구 폼 때문에 더 위력적 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반대로 최동원은 퀵모션이나 투구가 굉장히 빨라 오히려 타이밍이 맞추기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대행은 "최동원은 커브가 아주 낙폭도 크고 기가 막혔다"면서 가슴부터 배꼽 아래까지 손을 벌려 '최동원표' 커브의 위력을 설명했다. 반면 선동렬에 대해서는 "알다시피 선동렬은 슬라이더 아니었나"라고 취재진에게 확인한 뒤 "슬라이더가 얼마나 각이 좋은지 옆으로 한참 꺾였다"고 말했다.
두 선수의 주무기에 대한 설명을 한 뒤 김 대행은 "김시진도 슬라이더는 기가 막혔지만 선동렬보다 꺾이는 각은 작았다"라고 평가하고는 "김시진은 많이 꺾인다기 보다 딱 타자들이 속을 만큼만 적당히 꺾였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연 김 대행은 선동렬과 최동원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김 감독은 직접 답을 하는 대신 "최동원이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출전 때문에 프로 데뷔가 늦었지. 만약 프로 출범이 빠르고 최동원이 바로 프로에 뛰어들었으면 선동렬보다 더 대단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라고 결국 우회적인 답변만을 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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