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기자수첩] 최근 온갖 심의위원회들이 마치 가요를 난도질하지 못해 안달인 모양새여서 가요계 종사자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아무리 그 어느때보다 가수들이 '핫'해졌다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 등 너도 나도 나서서 가수들을 들쑤시는 통에 연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가사를 마구 잘라내고 있다. 두달 전에 발표한 신곡이든, 이미 10년을 멀쩡하게 전파를 탄 곡이든 상관없다. 술이 나오거나 이성과 '화끈하게' 논다 싶으면 가차없이 19금딱지를 붙인다. 밤 10시 이전에 불렀다가는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는 청소년 유해매체라는 것이다.
마약을 권한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총기를 난사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고작 애인 한명 떠나보내고 술 한잔 했다는데 심의기관들 눈에는 사회 위기 상황으로 비춰지는 분위기다. 수천만 국민이 즐기는 술이 가사에 등장해선 안된다는 주장. 술 먹고 괴로워해도 안되고, 술 그만 먹자고 자책해도 안된다. 대중가요가 청소년의 전유물을 뛰어넘은지 오래지만, 가요는 여전히 청소년 머리에 '맹목적'으로 주입하는 마약 취급을 받는다.
폭탄주 만들어 돌리는 회사 회식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리얼리티고, 이른 아침 낯선 남자 옆에서 잠을 깨는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절절한 이별노래와 신나는 댄스음악은 유해매체란 것이다.
그런데, 투피엠이 '핸즈업' 좀 불렀다고 술을 냉큼 사먹는 청소년이라면, 투피엠이 없어도 술을 먹지 않을까.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혹자는 "나도 그 노래 듣고 나니 술 생각이 나더라"며 우려했다. 노래 하나 때문에 음주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한 정신상태부터 우려할 일이다.
가사가 통과돼도 안심할 일은 아니다. 춤과 의상도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한다. 여자가 앉았다 일어나면, 여자가 다리를 벌렸다고 난리법석이다. 앉은 그 순간을 집요하게 캡쳐해 야하다고 돌을 던진다. 앉았다 일어선 가수보다, 그걸 캡쳐해 동그라미까지 치는 집요한 시선이 더 폭력적이다.
근거는 일견 타당하다. 청소년들이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아가 엉덩이를 좀 흔들었다고 해서, 비가 지팡이를 좀 휘둘렀다고 해서 그걸 '야하게' 해석할 줄 아는 청소년이라면, 그는 이미 성에 눈을 뜬 것이다. 이미 성에 눈을 뜬 아이에게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지, 무조건 보지 말라고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인터넷엔 더 야한 게 널렸는데, 그깟 가요 몇곡 금지됐다고 별로 신경도 안쓸 테다.
예술적으로 아무 가치 없이 무작정 야하기만 하고 폭력적인 콘텐츠는 어차피 시장에서 사라진다. 얼마나 수많은 섹시가수들이 별 희한한 짓을 다하다가 결국 사라져버렸는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청소년들이 잘못된 성관념을 가질까봐 걱정이 된다면, 대중문화를 제대로 걸러서 받아들이고, 올바른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게 우선이다. 숨기기만 하면, 결국 스스로 가치를 판단할 기회는 사라진다. 그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일부 어른들이 얼마나 삐뚤어진 '변태'로 자랐는지는 신문의 사건사고 기사들이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충동요인을 어설프게 제거하는 것보다는 충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 그게 교육 아닌가. 누군가를 성적으로 흥분시키니까, 애초에 하지 말라는 것은 야한 옷이 성폭력을 유발하니까 입지 말라고 하는 논리와 무엇이 다를까.
더 웃긴 건 가요에 난도질을 한다고 해서 큰 효과가 기대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청소년의 일탈과 성범죄를 부추기는 게 과연 지금의 가요인가? 인터넷에 널린 폭력적인 성인물과 '성폭력은 피해자도 문제'라는 잘못된 인식이 주범 아닐까.
법원은 지난 2008년 청소년보호위원회가 '19금' 딱지를 붙인 동방신기의 '주문-미로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가사 속 '내게 빠져', '한번의 키스와 함께 날이 선듯한 강한 이끌림' 등의 표현은 남녀 간의 사랑 내지 욕정으로 인한 과잉된 감정상태에서의 성적 행동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가사에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할 정도로 성행위의 방법이나 감정, 음성 등을 과도하게 묘사하고,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기술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야 유해매체물로 볼 수 있는데, '주문'의 가사가 오해의 여지는 있어도 성행위를 지나치게 묘사했거나 성 윤리를 왜곡 시키는 수준까진 아니다."
각자 취향에 따라 '저 노래 좀 야하네'라고 채널을 돌릴 정도는 되어도, 'TV에 나오면 큰일 나'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누가봐도 '19금이다' 할 만한 것부터 제대로 단속하고, 대중문화를 스스로 생각하고 걸러낼 수 있는 미디어 교육을 활성화하는 게 우리 사회가 우선해야 할 일일 것이다. 온갖 '딱지'를 남발하며, 가수들이 '청소년 일탈의 원흉'이라고 몰아세우기 전에 말이다.
이혜린 기자 ri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