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와 인사를 나눈 것은 2008년 11월 경남 진주 연암공대였습니다. 상무를 갓 제대하고 팀에 복귀한 그는 질문에 조리있게 답하며 최대한 성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고맙다는 생각을 물씬 들게 한 착한 선수였습니다.
2년 반이 지난 후 그는 다른 팀에서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여전히 착한 심성을 지닌 그는 전 소속팀에서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과 동료들, 코칭스태프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자신의 적응을 위해 살갑게 다가서는 현 소속팀 구성원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했습니다. 7월 31일 선배 심수창과 함께 LG 트윈스에서 넥센 히어로즈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박병호(25)가 그 주인공입니다.

포수로 뛰었으나 동료이자 라이벌이던 김현중(전 삼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 기록을 세우며 일약 고교 최대어 타자로 성장한 박병호. 그는 계약금 3억3000만원에 LG 1차지명으로 2005년 데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LG서의 4년(상무 2년 제외) 간 평균 1할대 타율과 잦은 삼진으로 확실한 자리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던 이날 박병호는 우완 송신영, 김성현의 반대급부로 넥센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당시 개인 17연패를 기록 중이던 심수창과 통산 1할9푼 대의 박병호.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은 '트레이드 추가 LG 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대번에 떠올렸구요.
그러나 넥센 박병호의 방망이는 대단한 위력을 발산 중입니다. 대구 삼성 3연전서 11타수 2안타(5삼진)로 아쉬움을 비췄던 박병호는 두산과의 홈 3연전서 11타수 7안타(6할3푼6리) 2홈런 5타점으로 4번 타자 노릇을 확실히 해냈습니다. 7일 경기서는 기존 4번 타자인 코리 알드리지가 어깨 부상을 털고 복귀했음에도 김시진 감독은 박병호를 4번 타자로 내세웠습니다.
"삼진을 먹더라도 자신있게 휘두르라고 기를 북돋워주고자 한다. 압박감을 갖지 않도록. 단점이 보여도 당장 고치지 않고 자기 장점을 올 시즌 동안 만이라도 제대로 펼치게 하고 싶다. 선수 본인도 계속 나서다보면 해결책을 스스로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박병호를 바라보는 김 감독의 시선은 굉장히 관대하군요.
박병호와의 일문일답을 지금부터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전 소속팀 LG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고 새로운 동반자가 된 넥센 선수단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그의 이야기에서 물씬 배어 나왔습니다.

- 안방 3연전에서 활약이 뛰어났습니다. 축하 전화나 연락도 많이 왔겠네요.
▲ LG 시절 동료들과 코치님들이 연락을 주셨어요. '네가 그 곳에 가서 좋은 활약을 펼치니 우리도 기분 좋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고 나서는 스프링캠프도 못 가고 잔류군에서 재활에 열중했거든요. 당시 김기태 2군 감독님과 허문회 타격코치께서 '올해보다 내년을 보고 열심히 하자'라고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 안방 첫 두 경기서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그것도 밀어쳐서 만든 홈런인데요.
▲ 사실 그 홈런 치고 저도 놀랐어요. 넘어간다는 생각은 했지만 크게 힘을 안 들이고 포인트에 제대로 맞아 나간 홈런이었거든요. 스피드가 늦거나 한 것이 아니라 임팩트 순간 제대로 맞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2경기 연속 홈런도 홈런이지만 6일 경기 좌전 안타가 인상 깊었습니다. 정재훈의 몸쪽 공이었는데 배트 손잡이 부근에 맞은 공을 그대로 외야까지 보내더라구요.
▲ 그 때 어떤 공이 오더라도 자신있게 휘두르자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몸 쪽으로 온 공인데 그냥 힘으로 우겨서 보낸 겁니다.(웃음)
- 트레이드를 경험한 만큼 마음가짐도 확실히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 새 출발이니까요. 확실히 남다르지요. 넥센 선수단은 분위기도 가족적이고 성적에 대한 부담감도 LG보다는 적은 편이라서 스스로의 부담감도 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마음을 먹고 있어요. 선배들께서도 편하게 해주시니 모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홈런 두 개 친 뒤에는 장난 삼아서 "넌 외국인 타자로 등록해야겠다"라고 농담을 건네는 선배들도 많았어요.(웃음)
- 김시진 감독은 큰 부담감을 주지 않고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 올 시즌은 일단 쳐 보고 싶은대로 쳐 보라고 하셨어요. 일단 지켜보고 시즌이 끝난 뒤에 보완할 점을 찾자고 하셔서 저도 마음가짐을 편하게 하고 제 스윙을 하고자 합니다. 삼진을 당하더라도 당당하게 나서면서 제 스윙을 하고 싶어요.
- 삼진을 당하더라도 과감한 자기 스윙이라면 남은 시즌 동안 거포로서 이미지 각인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여기 와서 예전에 심정수 선배(전 두산-현대-삼성)의 이야기를 뇌리에 새기면서 뛰고자 해요. '매 타석 홈런을 친다는 생각으로 나서라'라는 이야기였거든요. 삼진을 당하더라도 최대한 자기 스윙을 가져가면서 나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기회도 더 많아지고 주변에서도 격려해주시니 공격적이고도 자신감 있는 스윙으로 올 시즌만큼은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경기 전 알드리지와도 대화를 나누던데 어떤 이야기를 해주던가요.
▲ 사실 알드리지는 제가 LG 2군에서만 7년을 있었는 줄 알고 "그렇게 오래?"라는 식으로 깜짝 놀라더라구요.(웃음) 타구 결과가 안 좋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삼진을 당하거나 야수 정면으로 가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이야기였어요. 사실 LG 시절 출장 기회를 얻고도 '아, 여기서 못 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위축된 적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그래도 출장 기회를 꾸준히 갖다보니 마음도 편해진 것 같아요.
- 최근에는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스윙을 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얼마 전까지는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었어요. 공을 끝까지 보고 때려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는데 변하는 포인트를 잡고 휘두르면 공이 이미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얼마 전 송지만 선배께서 '히팅 포인트를 조금 더 앞으로 가져가는 게 어떻겠냐'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계속 경기에 나서다보니 타이밍을 잡는 요령도 조금씩 익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동료들 중에서 특히 각별하게 도움을 주는 선수들이 있나요.
▲ 누구 한 명 딱히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들 잘 해주시니까요.(웃음) (김)민성이가 2루에 서고 제가 1루에 서면 민성이가 수비 나가면서 편하게 해줘요. 말도 건네고. 그리고 (손)승락이 형이나 (김)성태 형도 적응 잘 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시구요. 정말 우리 팀 동료들이 다들 잘 대해 주셔서 누구 한 명 꼽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웃음)

LG 시절 출장 기회를 잡기도 했으나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그러나 그는 후회로 점철된 생각을 버리고 새 소속팀에서 편하게 자기 스윙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더욱 앞세웠습니다. 쉽지 않은 파도를 만난 뒤 긍정적인 사고로 적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네요.
사실 이 트레이드의 내막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분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팬들 또한 주축 선수가 이적하고 떠난 선수들보다 기대치가 떨어져보이는 선수들의 이적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구요. 물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한 팀의 일방적인 전력 손실 트레이드가 이뤄지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프로는 무조건적인 경쟁 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공생도 중요하니까요.
적어도 박병호와 심수창은 이 트레이드를 통해 간절했던, 제대로 된 출장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팔꿈치 근력을 완전 회복한 뒤에도 박병호가 LG에 잔류했더라면 두꺼운 1루, 외야 뎁스 속에서 1군 붙박이로 자리잡았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판단 하에 다른 팀으로 떠난 선수가 보란 듯이 성공하는 일. 박병호는 전 소속팀에 대한 묘한 적개심과는 다른, 진지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으로 새 팀에서의 다음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배팅 파워만은 국내 무대에서도 굴지로 꼽히는 박병호가 2009년 신데렐라가 된 김상현(KIA)의 이야기를 재현할 수 있을까요. 팬 여러분께 올해만이 아닌 내년과 그 이후의 박병호를 주목해 보시길 감히 말씀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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