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구장에서 LG만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한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화는 올해 LG에게 5승10패로 약하다. 하지만 LG를 만난 후 터닝포인트로 작용한 경기가 많았다. 지난 5월12일 전현태가 홈에서 충돌하며 피를 쏟은 뒤 한대화 감독은 심판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른바 '예끼 사건' 이후 한화는 10경기에서 7승3패로 승승장구했다. 지난 6월8일에는 희대의 보크 오심 사건으로 억울하게 패했지만, 오히려 선수단 전체가 똘똘 뭉치는 계기로 만들었다. 이후 8경기에서 한화는 5승3패로 선전했다.
모두 잠실 LG전에서 벌어진 일들이고 이것이 한화에게는 긍정적인 터닝포인트로 작용했다. 그래서 한화가 LG를 상대로 잠실 원정길에 오를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불안이 섞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아주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구단주를 맡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경기장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한 것이다. 지난 7일 잠실 LG전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실 LG와 3연전을 앞두고 한화는 침체일로를 겪고 있었다. 에이스 류현진은 왼쪽 등 견갑골 통증이 재발해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선발진에 구멍이 생긴 데다 타선도 침묵을 지켰다. 3연전 첫 경기였던 지난 5일 LG전에서도 한화는 8회 2사까지 상대 선발 벤자민 주키치에 안타는 몰론 볼넷과 실책으로도 출루하지 못하는 퍼펙트 굴욕을 당했다. 결국 이날 0-8 영봉패를 당하며 4개월 만에 4연패를 당했다.

하지만 이튿날 709일 만에 선발등판한 마일영이 4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가운데 박정진이 3⅓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키며 4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3연전 마지막날 '슈퍼루키' 유창식이 선발로 나와 선방한데다, 타선이 대폭발하며 기세를 올렸다. 한화의 기세가 한창 달아오른 시점에서 김승연 회장이 가족들과 함께 잠실구장을 찾았다. 회장님이 보는 앞에서 한화는 장단 16안타를 폭발시키며 11득점했다. 아주 화끈한 승리였다.
경기 후 김승연 회장은 3루측 한화 덕아웃으로 내려가 한대화 감독이하 선수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한 감독과는 두 차례나 진하게 포옹했다. 지난 5월 구단 경영진 교체와 함께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선언한 한화는 장단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김 회장이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속도가 붙었다. 김 회장은 한대화 감독에게 직접 금일봉을 건네며 "선수들에 프로 정신을 가르쳐달라"고 주문했다.
김 회장은 지난 1996년 5월 최하위로 추락한 선수단의 사기 진작을 위해 격려금 3억원을 지급한 뒤 경기장을 찾아 격려했다. 그해 한화는 최하위에서 시작해 3위로 시즌을 마쳤다. 1999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때에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함께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유승안 전 감독의 부인과 고(故) 진정필 코치가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해 있을 때에는 수술비를 전액 지원하고 직접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 올해도 한대화 감독과 젊은 투수 5인방에 전보를 보내고, 선수단 전원에게 한의원 진료와 보약을 처방할 정도로 선수단에 애정이 크다.
잠실 LG전 때마다 팀 분위기를 바꾸는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많았던 한화. 예상치 못한 김승연 회장의 선수단 격려가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작용할까. 이날 승리로 47일 만에 두산과 공동 6위 자리를 양분하는데 성공한 한화는 4위 롯데에 7경기차로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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