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남자니까."
786일만에 승리를 거둔 넥센 투수 심수창(30)의 눈가에 이슬이 살짝 맺히는 듯 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쳤다.
심수창은 9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6⅓이닝 동안 6피안타 2볼넷 2탈삼진으로 1실점, 팀의 3-1 승리를 이끌며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1승. 그러나 이 짜릿한 감동을 맛볼 때까지 18연패를 거치며 2년 1개월 25일이 걸렸다.

이날 넥센 덕아웃은 경기 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심수창을 보는 이마다 "걱정마라", "우리만 믿어라"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뭔가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정말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듯한 비장감도 살짝 감돌 정도.
김시진 감독만이 오히려 "자기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며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였을 정도. 나중에야 "올해 가장 부담이 큰 경기였다. 1승을 지켜주기 위해 내일은 생각하지 않았다"며 "5회까지 5점을 줘도 내리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던 김 감독이었다.
넥센 타자들은 5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로 안정된 피칭을 하던 송승준을 상대로 1회 벼락처럼 3점을 뽑아냈다. 1회 수비 때 심수창이 곧바로 김주찬에게 솔로포를 맞아 3-1로 쫓겼다. 이후 넥센은 수비에서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볼 움직임 하나하나에 움직임이 달라질 정도로 기민함이 돋보였다.
경기 후 감격의 승리를 따낸 심수창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보기도 하고 덕아웃 천정에 손을 쭉 뻗어 현실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려 노력했다. 동료들도 이런 심수창을 포옹하는가 하면 토닥이고 쓰다듬어줬다. 이에 심수창 역시 자신의 승리를 위해 노력한 동료들의 플레이를 일일이 기억해냈다.
심수창은 가장 먼저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허도환에 대해 "도환이가 매경기 잘도와준다.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볼배합 하나마다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진다"고 칭찬했다. 이어 "허슬플레이는 물론 전력으로 뛰어 3루로 뛰던 주자를 잡아낸 것에 너무 고마웠다"고 떠올렸다. 허도환은 5회 1사 2루에서 심수창이 던진 폭투성 볼을 블로킹했고 재빨리 3루로 뛰던 2루주자 황재균을 태그아웃으로 잡아냈다.
또 심수창은 세이브로 승리를 지켜 준 마무리 손승락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승락이가 오늘 특히 자기를 믿어보라고 큰소리쳤다"는 그는 "무사 1,2루가 돼서는 불안했지만 선수들이 '걱정하지 말라. 승락이는 믿어도 된다'고 하더라. 우익수 플라이가 된 후에는 이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웃었다.
또 "민우형을 비롯한 야수들도 떨린다고 하더라. 마치 시리즈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김성태는 순간마다 환호성을 질렀다"며 "눈물이 나올 뻔 했는데 참았다. 남자니까"라고 환한 웃음을 보였다. 여기에 심수창은 "위기에서도 믿어주시니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코칭스태프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심수창은 이날 승리가 자신의 승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심수창은 마운드를 내려올 때 정민태 투수코치가 건네준 볼에 대해 "(18)연패를 끊는 것이었고 이적해서 첫 승이라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1승이 아니라 이적 후 첫 승이라는 말에서 팀스포츠의 감동이 잔잔하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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