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트리오'가 아닌 '윤동지 트리오'로 경기를 시작했다. 선발 라인업에 빠져있던 '김'과 '석'은 결정적인 순간 히든카드로 나왔으나 허무하게 고의 볼넷으로 출루했다. 그리고 그들은 잔루 주자가 되고 말았다. 10일 두산 베어스-SK 와이번스의 9회말은 무사 만루에서 단 한 점을 뽑지 못하는 보기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두산은 지난 10일 잠실 SK전서 5-5로 맞선 9회말 무사 만루 끝내기 찬스서 한 점도 뽑지 못하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결국 두산은 연장 10회초 대거 6점을 내주며 5-11로 패했다.

상황은 이렇다. 앞서 나가다 9회초 정근우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내준 두산. 그러나 그들은 4-5로 뒤진 9회말 오재원의 우전 안타와 김동주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찬스를 맞았다. 두산 벤치는 여기서 양의지에게 번트 사인을 냈다.
양의지의 번트는 투수 박희수 앞으로 향했고 박희수는 주저없이 3루로 송구했다. 그러나 송구는 3루수 최정의 글러브를 외면한 채 뒤로 흘렀고 그 사이 오재원이 홈을 밟으며 5-5가 되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희생할 수 있던 고육책이 실책에 편승하며 만들어진 무사 2,3루 찬스. 분위기 상 두산이 끝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여기서 두산은 이성열 대신 대타로 최준석을 내세웠다. 최준석은 최근 왼 무릎이 좋지 않지만 2할8푼8리 12홈런 55타점(10일 현재)을 기록 중인 중심타자 중 한 명. 좌완 박희수가 마운드에 있다는 것도 최준석 대타 카드를 꺼내 든 이유였다.
그러나 무사 만루나 1루 주자가 있던 시점이 아니라 2,3루였다. 여기서 SK는 1루가 비었던 만큼 박희수에게 고의볼넷을 지시하며 두산이 야심차게 꺼낸 대타 카드 하나를 거르는 도박을 감행했다. '모 아니면 도'인만큼 어차피 이성열이 나왔더라도 고의볼넷이 나올 수 있던 순간이다. 그리고 무사 만루에서 뒤를 이은 손시헌의 타구는 아쉽게도 5-2-3으로 이어지는 3루수 앞 병살타가 되었다. 2사 2,3루.
2아웃으로 분위기가 SK쪽으로 쏠린 상황. 여기서 두산은 이원석 대신 김현수를 대타로 투입했다. 올 시즌 아쉽다고는 해도 3할2리 8홈런 55타점을 기록 중인 김현수는 이날 경기 전 왼 발등 통증으로 인해 선발 라인업에서 빠져 있었다. 두산에서 김현수를 대타 카드로 내보냈다는 것은 반드시 이기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SK 입장에서는 만루가 아닌 2,3루에서 김현수가 나온 것이 반가운 일. 전날(9일) '김현수 시프트'의 허를 찌르는 끝내기타를 때려냈던 타자인 만큼 껄끄러웠던지라 거르면 그만이었다.
결국 2아웃 만루라는 찬스는 고영민 앞으로 떨어졌다. 이전 4타석 중 두 차례 볼넷 출루와 희생플라이, 적시타로 모두 출루하거나 타점을 올리며 이 날 경기 '제일 잘 나갔던' 고영민은 중견수 뜬공을 때려내고 말았다. 그와 함께 두산은 다 잡았던 승리를 SK에 넘겨주었다.
결과론적 이야기를 떠나 1루가 비어있던 순간 거물 타자를 대타 카드로 사용한 것은 분명 두산 입장에서 헛손질과도 같았다. SK 입장에서는 주자가 쌓이는 위험 부담이 있어도 대타 카드보다 그나마 덜 껄끄러운 타자와 상대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타격은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강공 전략 시 7할 가까이 실패하는 업종이다.
김현수와 최준석은 김동주와 함께 '김동석 트리오'로 중심타선을 구축하는 타자들이다. 그만큼 두산에서는 가장 믿는 방망이.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꺼내 휘두른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상대를 가격하지 못했다. 그리고 SK는 김현수와 최준석이라는, 두산이 아끼는 쌍칼이 허공을 가른 뒤 주춤거리는 틈을 타 그 옆구리를 깊숙히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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