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 혹은 쿠세(くせ)=버릇, 습관의 일본말
야구계에서 이 말은 대개 답습해서는 안 되는 나쁜 버릇으로 통용됩니다. 특히 투수가 보여주는 나쁜 버릇은 타자가 포착해 노림수 타격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에 결코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똑똑한 투수는 일부러 이를 역이용해 허를 찌르는 투구를 하며 타자를 농락합니다.

김시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2년차 우완 문성현(20)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 조심스레 투수들의 투구 버릇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문성현은 지난 13일 문학 SK전서 4⅔이닝 6피안타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문성현은 이날 연타로 실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회 1실점도 최정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준 뒤 이호준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했고 뒤이어 최동수에게 1타점 중전 안타를 맞았습니다. 3회도 김강민에게 2루타를 맞은 뒤 최정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하며 연타로 실점하는 등 패전으로 이어진 2실점이 모두 연타에 의한 투구 내용이었습니다.
탄착군이 다소 흔들리기는 했지만 구위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문성현입니다. 선수 본인 또한 "최근 투구 밸런스가 괜찮다"라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김 감독은 "성현이의 공이 지난 두산전(7일 7이닝 2피안타 무실점 승)보다 약간 안 좋기는 했지만"이라면서도 버릇이 타자들에게 읽힌 것이 컸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일단 난타당했을 때는 정민태 코치와 투구폼을 체크한다. 버릇이 상대에게 노출되면 곤란하다. 그래서 한 쪽은 버릇을 감추려하고 또 상대는 집요하게 파헤치려는 것이 야구다".
14일 3⅔이닝 7실점으로 난타당하며 패전투수가 된 심수창(30)의 경우도 버릇이 읽힌 투구 내용이 보였습니다. 3회까지 5안타를 내주면서도 결정구로 포크볼을 던지며 SK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렸던 심수창은 4회 SK 타자들이 포크볼에 속지 않으면서 불리한 카운트 싸움을 하다가 7점을 집중적으로 내주고 말았습니다.

권용관에게 내준 좌월 만루포는 141km의 직구로 땅볼을 노려 우타자 무릎선에 가깝게 가는 공이었으나 권용관이 이를 제대로 노려 어퍼 스윙으로 때려낸 감이 컸네요. 심수창의 포크볼 낙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과 무릎선에 가깝게 갔던 결정적 직구를 권용관이 받아쳤다는 점은 심수창도 버릇이 읽혔다는 심증을 갖게 합니다. 물론 권용관 타석에서는 1사 만루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땅볼을 이끌어야 했다는 가능성이 남아있지만요.
올 시즌 타격 1위(3할5푼4리, 15일 현재)를 달리며 최고의 컨택트 능력을 자랑 중인 이용규(KIA)의 타격 사진을 보셔도 아시겠지만 사실 타자들의 타격 장면을 지켜보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동체 시력이 굉장히 좋은 타자라도 공이 날아와서 맞는 순간 시선은 날아오는 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꼬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느린 변화구라도 18.44m의 투구거리를 날아가는 동안 미트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찰나입니다.
워낙 빠르게 날아가는 공이라 결국 궤적을 읽어 구종을 파악하고 '게스(Guess-예측하다) 히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던지기 전 구종을 먼저 알 수 있다면 코스만 제대로 파악할 경우 '게스 히팅'이 아닌 '컨빅션(conviction-확신)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겠지요. 그만큼 타자가 투수의 버릇을 읽는 눈썰미를 갖췄다는 점은 엄청난 무기입니다.
물론 지금은 전력 분석 면에서 굉장한 발전을 이룬 만큼 타자들이 눈썰미를 심도있게 발휘하지 않아도 투수의 버릇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넥센을 공략한 SK의 경우는 국내 최고급 전력분석을 자랑하는 팀입니다. SK만이 아닌 삼성도 뛰어난 전력분석팀을 보유하고 있고 야구 잘하는 팀은 대개 전력분석팀의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성적이 좋은 팀은 다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야구는 다른 단체 스포츠에 비해 상대의 허점을 심도있게 파고들어 승리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그리고 선수 특유의 버릇은 이를 읽는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읽히는 쪽이 더욱 분발해 수정하고 보완하거나 역이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무결점에 가까운 모습에서 하나의 결점을 찾아 그 곳을 제대로 찌르는 야구. 그래서 야구는 알면 알 수록,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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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