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로서 제 몫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도 올 시즌 험난하네".(웃음)
단순한 투수 개인의 기록이 아니다. 팀의 자존심이 달린 기록이기 때문에 투수 한 명의 분전만이 아닌 감독대행을 비롯한 선수단 전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두산 베어스 투수진 맏형 김선우(34)의 17일 LG전서 던지는 시즌 9승 도전장은 선수 개인과 팀에 정말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김선우는 올 시즌 20경기 8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44(16일 현재)로 2008년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이후 가장 내실있는 투구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 관계자들 또한 김선우에 대해 "구위는 하락했으나 선발 에이스로서 농익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라며 호평하고 있다.
그러나 8월 들어서는 2경기서 불운한 모습을 비췄다. 4일 잠실 KIA전서 9이닝 5피안타 2실점 완투를 하고도 타선 지원이 빈약해 패배를 맛보았던 김선우는 10일 잠실 SK전서는 9회까지 나섰다가 8이닝 8피안타 5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조차 날아가고 말았다. 투타 밸런스 불균형으로 인해 김선우가 9회에도 나설 수 밖에 없던 팀의 어두운 단면이다.
만약 김선우가 올 시즌 10승 이상을 달성한다면 이는 김상진(현 SK 투수코치)이 전신 OB 시절이던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기록했던 5년 연속 10승 달성 이후 16년 만의 3년 연속 국내 선발투수 10승 기록이다. 다니엘 리오스, 맷 랜들(이상 2005~2007시즌) 등 외국인 투수들은 달성한 기록이지만 두산으로 이름이 바뀐 이후로는 이 기록을 달성한 국내 선발 투수가 없었다. 선발승 기준을 차치하고 두산 국내 투수 중에서도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꾸준히 올린 이는 없었다.
"3년 연속으로 꾸준하게 제 모습을 보여야 스타 플레이어"라는 야구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김선우의 기록 도전은 의미가 있다. 또한 이는 김명제(2005년 1차지명), 임태훈, 이용찬(이상 2007년 1차 지명) 등 당대 고교 최대어들을 입단시키고도 이들을 선발 에이스로 키우지 못한 두산의 어두운 단면도 보여주는 예다.
그나마 해외파로서 김선우가 자존심을 지킬 경우 두산은 올 시즌 팀 성적 하락 속에서 마지막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동료들과 코칭스태프가 그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는지 여부다.
2009시즌 11승을 올렸으나 5점 대 평균자책점(5.11)을 기록했던 김선우. 2년 전 그가 맹공 타선의 지원을 받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 시즌 두산 타선은 리드를 잡아내고도 더 달아나지 못해 추격권을 허용하거나 결국 역전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 속내에는 계투진이 허약해졌다는 이유도 있다.
10일 SK전은 김선우의 올 시즌 불운을 집약해놓은 경기와도 같았다. 타선이 선취점을 뽑지 못해 초반 끌려가던 김선우는 타선이 4-3 역전에 성공한 덕분에 한결 부담을 벗고 8회까지 117개의 공을 던졌다.
그러나 결국 타자들이 더 달아나지 못했다. 여기에 가장 믿음직한 계투 정재훈의 어깨 부상 전력, 고창성의 최근 제구 불안, 노경은-김강률의 경험 부족으로 김선우가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결국 구위가 떨어진 김선우가 추가 2실점을 떠안았다. 투수 본인이 등판을 자처했더라도 코칭스태프가 만류했어야 하는 아쉬움도 짙게 남은 경기다.
"승패는 운에 달렸다. 선발로서 퀄리티스타트와 낮은 평균자책점을 가장 먼저 노린다"라는 김선우지만 번번이 선발투수가 승리를 놓치면 선수 본인도 낙심하게 마련. 오죽했으면 10일 경기 후 김선우가 "결국에는 내가 이기면 팀도 이기는 거니까. 포기할 수가 없었다"라며 실토했을 정도.
아직 김선우의 등판 기회는 많이 남아있으나 최근의 불운한 경기가 연속된다면 올 시즌 10승 이상을 달성한다는 보장도 없다. 3점 대 중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팀 선발진 간판이 한 시즌 두 자릿 수 승수를 올리지 못한다는 것은 지난해 류현진(한화) 같은 압도적인 에이스를 보유하지 않는 한 그 해 리그 최약체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김선우가 만약 올 시즌 3년 연속 10승 이상에 실패한다면 두산 또한 "1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큰 부상 없이 꾸준히 뛰는 국내 선발투수 주축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다. 전임 감독들의 스타일을 따지기에 앞서 구단이 투수 유망주에 대한 투자 및 성장에 얼마나 힘을 쏟았는지 의심받게 된다. 선수 개인과 동료를 넘어 팀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실추될 수 있는 잔여 시즌. 김선우의 17일 LG전 9승 도전 의미가 정말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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