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이탈 선언' SK, 맥 풀린 경기력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1.08.17 21: 22

야구는 멘탈게임이다. 지고 있더라도 기대고 믿는 구석이 있다면 언제든지 반격을 가하는 경기가 펼쳐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이 올해까지로 한정지어진 SK 와이번스가 삼성 라이온즈에 멱살 잡힌 듯 끌려가다 패하고 말았다.
 
SK는 17일 인천 문학구장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서 이미 1,2회 도합 8점을 내주는 등 무기력한 경기 끝에 0-9로 패하고 말았다. 시즌 전적 52승 41패로 아직 3위(17일 현재)에 위치한 SK지만 그들 답지 않은 경기력이었기에 경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 시작 1시간 여 전 김성근 감독이 '올시즌까지만 팀을 맡겠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기 때문. 야구는 종목 특성 상 선수들의 분위기 파악과 이를 보는 시야가 다른 단체 스포츠에 비해 뛰어난 편이다. 감독의 재계약 포기 선언은 삽시간에 선수단 전체로 퍼져나갔다.
 
외국인 선발 게리 글로버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글로버는 2⅓이닝 11피안타(2피홈런) 4탈삼진 8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3경기 연속 조기 강판이기는 했지만 한국무대 데뷔 후 최다 실점이다. 온갖 부상이 자신을 괴롭혔던 지난해 후반기에도 이런 경기력은 보여주지 않았던 글로버다.
 
타선도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상대 선발 덕 매티스는 특유의 의기를 잃은 SK 타선을 상대로 과감하게 공을 던졌고 SK 타자들 또한 끈질기게 달라붙고 찬스에 강했던 모습을 잃어버렸다.
 
이날 타선에서 1~3번 박재상, 김강민, 최정과 5번 타자 박정권, 6번 타자 최동수, 9번 타자 포수 허웅은 전-현 소속팀을 아울러 김성근 감독의 지도 속에서 주축 선수가 되고 또 발돋움하는 타자들이었다. 특히 1~3번 타순에 배치된 박재상-김강민-최정은 김성근 감독 재임 이전 입단한 이들이지만 그들의 기량을 꽃 피운 시기는 바로 김성근 감독 시절이다.
 
선수 개개인 극도의 인내력을 시험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훈련량을 자랑하는 '김성근호' SK지만 선수들은 그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적응되었고 이제는 스스로 그렇게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선수단 맏형인 안방마님 박경완은 쌍방울 시절부터, 그리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말 힘들다. 무지하게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것을 겪고나면 얼마나 달콤한 결과물이 나오는지 선수들이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2008년 우승 이후에는 후배들이 스스로 더 많은 훈련량을 소화해내더라".
 
야구에 있어서는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김성근 감독은 적어도 뜨거운 야구 열정과 성실함으로 뭉친 선수를 주시했고 그들을 중용하고자 했다. 선수들 또한 그 결과물이 우승이라는 세상 최고의 달콤한 꿀과 높은 연봉 인상률로 이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의 혹독한 지시에 따랐다.
 
감독은 떠나면 그만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헤어질 수도 있다'라는 마음을 먹었던 김성근 감독인만큼 그는 그 한 마디로 끝을 냈다. 그러나 그의 스파르타식 지도를 받던 선수들은 그 한 마디에 바람빠진 풍선처럼 갈팡질팡 허공을 휘저었다. 그리고 팬들은 빗줄기 속 1루측 관중석에서 "감독님"을 연이어 외쳤다. 8회초 삼성 공격 도중에는 관중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김성근 감독이 있는 1루 덕아웃으로 고개를 떨군 뒤 안전요원들에게 끌려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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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천=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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